올해로 창립 10년을 맞는 시민단체의 ‘맏형’격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흔들리고 있다.
발단은 경실련 유종성(柳鍾星)사무총장이 1월 초 모일간지에 기고한 신문칼럼의 표절시비. 발단은 단순해 보이지만 상황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정의연구소 이필상(李弼商·고려대교수)소장과 하승창(河勝彰)정책실장 등 직원 11명이 유총장 체제에 반발해 경실련을 떠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경실련의 문제는 다른 시민단체들에도 초미의 관심사. 지도부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직원들의 불신과 내부 의사결정구조의 비민주성 및 관료주의가 경실련 문제의 진짜 배경이라고 보는 시각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만큼 결코 ‘강 건너 불’로 여길 수 없는 처지다.
하전실장은 “정치권의 영입 대상이 된 경실련 관계자들이 정치권과 분명한 선을 긋지 못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지도급 인사들이 정치권으로 편입되고 금융실명제 등 시민단체의 주장이 정치권에서 수용되면서 시민운동단체와 정치권의 긴장관계는 급속히 허물어졌다.이런 상황은 현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계속돼 왔다. 김태동(金泰東) 이진순(李鎭淳) 김성훈(金成勳)교수 등 경실련 관계자들이 잇따라 정권에 참여했다.
최열(崔冽)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 등 시민운동가들은 이를 두고 “정치적 기반이 약한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시민운동을 활용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종근(柳鍾根)전북지사를 형으로, 여당 당직자를 부인으로 둔 유총장의 정치적 지향성에 대한 불신이 경실련 사태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시민단체의 관료주의도 시민단체의 건강성을 위협하는 문제로 지적된다.
참여연대의 한 간부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이유로 단체대표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토론문화가 사라지고 관료주의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표가 ‘장기집권’중인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에도 문제가 잠복해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경실련 사태에서도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상임집행위원회에 상근직원들의 의견을 대변할 실국장 참여가 배제되는 등의 문제점이 집중 제기됐다.
실적 위주의 사업진행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시민운동이 너무 광범위한 사회문제에 대응하려다 보니 결국 조사활동이 부실해지고 때로는 무책임한 발표와 성명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일부 시민운동가와 사회학자들은 ‘명망가 중심의 시민운동’ ‘시민의 참여없는 시민운동’이 한계에 온 것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시민의 참여가 부족한 상태에서 명망가 중심의 운동을 고집하다보니 관료주의가 팽배해지고 일부 명망가들의 정치적 편향성이 문제될 때마다 시민운동 전체가 큰 상처를 입는다는 것.
이들은 명망가를 중심으로 한 ‘이목끌기식 운동방식’도 결국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부족에 따른 대중성 부재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운동가들은 아직 ‘시민운동의 가능성과 건강성’을 믿고 있다.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협의회 양장일(梁將一)사무국장은 “경실련의 평간사들이 대표의 퇴진을 직접 거론하고 개혁특위를 구성하도록 한 것은 시민단체가 아직 다른 사회조직보다 민주적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시민단체가 경실련 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부단히 자기혁신을 이룬다면 시민단체의 발전가능성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필상교수는 “시민단체들이 안팎에서 제기되는 모든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며 “우선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내고 지역조직을 활성화하는 한편 시민단체들도 영역별로 분화된 전문성을 갖춰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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