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주재 북한대사관의 전 과학기술참사관 홍순경씨(61) 일가의 납치사건이 태국과 북한간의 외교마찰로 비화될 조짐이다.
태국 정부는 북한 공관원들의 홍씨 일가 납치사건을 ‘명백한 주권 침해행위’라고 규정했다. 대북(對北)조치 강도도 사과요구에서 ‘공관원 체포 및 조사→외교관 신분박탈 검토’ 등으로 점차 높이고 있다.
지난달 19일 잠적했던 홍씨 일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여일 뒤인 9일 방콕 동북부의 고속도로 상에서였다. 이들은 두 대의 승용차에 실려 라오스 방향으로 끌려가던 중이었다.
홍씨와 부인 표영희씨가 탄 승용차가 전복되면서 이들 부부는 극적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고 아들 원명씨(20)를 태운 승용차도 태국 경찰의 국경봉쇄조치로 라오스 국경을 넘지 못했다. 원명씨의 소재는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자 태국 정부는 자국의 영토 내에서 제삼국 인사들이 납치극을 벌였다는 사실에 발칵 뒤집혔다. 태국의 수린 핏수완 외무장관은 즉각 △사과 △재발방지 약속 △원명씨의 신병인도 등 세 가지 조치를 북한에 요구했다.
또 추안 리크파이 총리 지시로 외무부와 국가안보위 국가정보국 국방부 경찰 등으로 합동대책반이 구성돼 수사에 착수했다. 태국 경찰은 납치사건에 관여한 북한인을 모두 12명으로 파악하고 이 중 북한대사관 안전책임자인 김기문과 홍공동 용석근 김경철 등 4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태국 정부는 북한에 요구한 조치들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북한공관원들을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규정해 면책특권을 박탈하고 추방할 것이라고 현지 외교소식통들이 전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정확한 반응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홍씨가 쌀 대금을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북한이 태국 정부의 요구를 쉽게 수용할지 미지수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건이 1차적으로는 북한과 태국간의 문제라는 점에서 ‘드러나지 않는’ 외교에 주력하는 상태다. 다만 “홍씨의 자유의사가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홍씨의 망명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실도 이미 홍씨에 대해 난민지위를 인정, 홍씨의 망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또 홍씨가 줄곧 서울행 의사를 밝히고 있어 한국 망명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원명씨의 신병 인도 여부다.
홍씨는 “아들을 돌려달라”며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대응여하에 따라 홍씨의 망명 성사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 홍순경 참사관은 누구?
홍순경씨는 태국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무역참사관으로 8년 가량 근무하면서 쌀 수입 업무 등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참사관으로 보직이 바뀐 것은 최근이라는 것. 북한측이 홍씨가 쌀 대금을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그의 전력과 관계가 있다. 홍씨의 장남은 북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납치됐으나 아직 소재를 알 수 없는 원명씨는 홍씨의 차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