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노인복지를 맡는 정부기관보다 노인단체인 ‘미국 은퇴자협회’(AARP·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를 더 잘 안다.
뉴욕 존에프케네디(JFK)국제공항. 입국심사대의 직원은 복지부의 노인청(AOA·Administeration on Aging)을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그게 뭐냐”“어디어디에 갈 거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최근 아시아인들의 여권 위조사건이 많아 불법입국자가 아닌지 의심했던 것. 그러나 AARP의 이름을 대자 금새 태도가 바뀌었다. 워싱턴 내셔널공항에서도 마찬가지. 공항 1층 여행객안내소의 50대 여성 직원에게 “한국에서 AOA AARP 등을 취재왔다”고 밝히자 AOA는 모르지만 자신도 AARP의 회원이라며 반겼다. 옆에 있던 60대 남자 직원도 “나도요”라며 끼어들었다. 그들은 20여곳에 전화를걸어 호텔을 잡아줬다.
공항에서 택시로 20분 정도 거리. 노스웨스트가(街)에 있는 상아색의 6층 벽돌 건물. AARP의 본부다. 부근의 다른 빌딩과는 달리 직원과 방문객이 대부분 60대 이상이어서 전체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느낌.
AARP는 회원 3천3백만명, 준회원 3천5백만명의 세계 최대 노인단체. 워싱턴에 본부가 있고 지역사무소 5개, 주 사무소 21개, 유급직원 1천8백여명의 매머드 규모. 58년 고교교장을 정년퇴직한 에델 퍼시 앤드루스박사가 노인의 생명보험을 들어주지 않는 보험회사들을 설득하고 다니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미국의 장년층은 이 단체를 ‘유령’이라고 부른다. 만 50세 생일이면 어김없이 회원가입신청서를 보내와 자신을 ‘노인 취급’하기 때문. 워싱턴 조지타운가 식당에서 만난 회사원 데이비드 팔머(47)는 “가입서를 보지 않으려 50번째 생일 때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매년 가입신청서를 받는 3백만명 중 반 정도가 회원이 된다. 회원은 매달 한번 ‘뷸리틴’, 두달에 한번 ‘모던 머츄리티’ 등의 잡지를 공짜로 받아 본다. 호텔과 렌터카를 10∼20% 싸게 이용할 수도, 약을 할인 가격에 배달받을 수도 있다. 기업이 퇴직을 강요하면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연회비는 우리돈 1만원이 채 안되는 8달러.
AARP는 ‘도움은 받기보다는 주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회원들의 각종 자원봉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를 위한 교육프로를 운영하며 ‘자원봉사자 뱅크’를 통해 개인의 특성에 맞게 봉사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또 79년부터 ‘55 생존 신중 운전법’ 프로그램을 운영. 희망자에게 8달러를 받고 이틀 동안 하루 4시간씩 안전운전법을 가르친다. 보험회사에선 이 과정을 이수하면 보험료 할인 혜택을 준다.
노인의 권익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다른 시민단체와 함께 ‘노인권익을 위한 입법운동’을 펼쳐 △65년 65세 이상에게 무료 의료혜택을 주는 ‘메디캐어’를 법제화했고 △70년대말 기업의 정년제를 폐지했으며 △93년 기업이 직원이나 그 가족이 아플 경우 1년에 12주 유급휴가를 보내도록 만들었다.
최근엔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1급자문단체로서 ‘99연대’(Coalition 99)를 조직해 유엔 차원의 ‘세계 노인의 해’ 행사를 준비했고 최근 외국노인에게도 회원이 되는 문을 열어 놓았다. 외국인의 연회비는 10달러.
〈워싱턴〓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