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말∼96년 국내에 들어온 질샌더(Jil Sander·독일) 프라다(Prada·이탈리아) 안나몰리나리(Anna Molinari·이탈리아) 등 외국 유명패션브랜드의 판매 성장세가 가파르다.
후발브랜드들의 판매전략과 스타일은 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에 들어온 에스까다 아르마니 등 ‘1세대 외국브랜드’와 크게 다르다.
▽돈만으론 안된다〓질샌더와 관련, 패션전문가 강혜승씨는 “구매층이 단순히 ‘경제력’을 넘어 ‘직종(신분)’에 따라 구획지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 무늬와 장식을 배제한 미니멀리즘으로 단순하고 젊잖으며 ‘표가 안나는’ 대신 옷감의 소재와 그 가벼움, 착용감에 천착한 점이 전문직종사자에게 어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 반면 화려함을 추구하는 ‘밤무대’ 종사자들은 기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결국 질샌더는 ‘폐쇄적 상위문화’의 이미지를 만들어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는 평. “나는 옷감을 결정한 후에야 비로소 디자인한다.”(질샌더)
▽빠른 순환〓화려함보단 고상함을 강조하는 프라다지만 일부 제품은 출시연도와 시즌까지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변신의 폭이 넓다. 슈트의 양 가슴에 주머니를 달거나 스커트에 구멍을 뚫고 거울조각을 붙이는 식. 이 때문에 트랜드의 ‘명멸(明滅) 사이클’이 단축됐다. 최근 △잠옷에서 컨셉을 따온 ‘파자마룩’이나 수술복을 본 딴 ‘클리닉룩’ △나일론이나 캔버스천을 슈트에 대담하게 도입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
특히 프라다 스포츠의류의 경우 허리나 팔뚝에 차는 핸드백을 옷과 같은 소재로 만듦으로써 옷과 잡화를 ‘세트’로 인식토록 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했다. ‘유행’과 ‘자기 고집’의 조화는 프라다가 추구하는 또다른 시도다.
▽꽃무늬도 ‘다르다’〓장미와 라벤더 꽃무늬로 대변되는 ‘공주풍’의 안나몰리나리. ‘고가(高價)+아기자기함’을 주무기로 ‘쫙빠지고’ 화려하고 정교한 스타일인 기존 해외브랜드의 틈새를 파고 들었다. 로맨틱 브랜드는 슈트보다는 가디건 니트 스커트 등을 개별구입하는 경우가 많은 게 특징. 다른 옷과 매치가 쉽고 ‘벌’단위로 사지 않아도 독특한 꽃문양 덕분에 브랜드가 바로 인식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
▽진짜같은 가짜〓강한 유행성과 ‘추종성’으로 무장한 질샌더와 프라다 등은 핸드백과 구두를 필두로 급속히 소비자에게 파고들고 있다. 그 결과 진품과 가짜를 분별하는 대중의 ‘눈’이 정교해지는 효과가 발생. 이렇게 되자 핸드백 내부의 표식카드까지 똑같은 ‘공들인 가짜’가 생산되며 ‘카피시장의 고급화(고가화)’가 초래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 브랜드 모조품의 가격은 최근 서울 이태원과 신촌 등지에서 오리지널의 4분의 1 수준까지 치솟았을 정도.
〈이승재기자〉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