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4대 개혁 중 가장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공공부문 개혁방안으로 ‘작은 정부’의 구현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개방화와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방만한 정부조직을 경량화하자는 것이 작은 정부론의 골자다. 수십년간 누적돼온 정부기능 만능주의가 행정의 경직화와 공공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전반적인 조직 축소는 뒤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작은 정부란 정부만능주의와 중앙집권적 사고방식이 지배하던 시절 중앙정부가 과다하게 집적해놓은 기능과 권한을 적절한 수준으로 축소하는 것을 말한다. 중앙정부가 반드시 해야 하고 또 잘 할 수 있는 역할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기능은 민간부문과 지방정부에 위임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물론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어떻게 하면 행정서비스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행정개혁 논의는 마치 조직축소와 인원감축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전개되고 있어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기구와 인원의 감축이 따를 수 있지만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더구나 정부 각 부문에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몇 퍼센트를 감축하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을 뿐 아니라 자칫 개혁을 개악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무조건 축소하는 것은 무엇보다 효율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조직개편의 초점을 기구와 인원 축소에 한정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기능 중심의 발전적 변혁을 기대하기 힘들 것은 자명하다. 경제 사회 여건의 변화에 따라 정부기능이 보강돼야 할 부분도 있다. 일례로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이나 사회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행정력이 필수적이다.
지방정부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하거나 지방에 파견된 인원을 해당 자치단체에 배속시키면 지방정부의 기구나 인원이 늘어날 수 있다. 이를 두고 지방정부의 인원이 늘었으니 줄여야한다는 식의 우격다짐을 되풀이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비능률과 획일주의의 전형이 아닐까 한다.
농촌인구가 줄었으니 군청공무원 수를 줄여야한다는 주장 역시 단순논리에 불과하다. 경제발전과 함께 공공서비스의 양적 확대가 보편적 추세이고 바람직한 측면도 많다. 과거에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던 사회복지, 환경관리 등 새로운 행정수요가 발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의 행정서비스 중 인구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일정 수의 행정인력이 필요한 경우도 많이 있다.
행정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공공서비스의 질이다. 이는 곧 세계화시대의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된다. 비효율적이고 방대한 국가조직을 규모있게 재조정하는 작업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형적으로 축소된 ‘작은 정부’가 반드시 서비스 향상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정부조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개선 조짐이 뚜렷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부기능에 대한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을 거치기보다 외형적인 부처 통폐합을 중심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조직개편의 효과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무리였다.
작금의 정부개혁 논의는 국가행정조직의 근간을 손질하는 중대사다. 획일적 인원 감축보다는 국가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에 따라 정부와 민간부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재설정한 뒤 기능과 권한의 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유종근(전북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