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21일 경남 합천 해인사 방문을 끝으로 3일간의 방한 활동을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날 오전 서울에서는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비가 그치면서 광화문 거리에 걸린 일장기 색깔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일장기가 태극기와 나란히 걸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6일 한일의원 축구경기 참가를 위해 도쿄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아침 우리 의원 일행의 시선을 끈 것은 일본에서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신문의 1면 톱기사였다. ‘한국의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일본 정부가 2억달러 차관을 제공한다’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다. 한국은 재원이 없어 일본에 의존하게 됐으며 지원 대상은 수원시라는 것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었다.
일본정부 안에서도 경기장 건설지원은 원조범주에서 벗어난다는 소극적 의견도 있었으나 공동개최 성공이 최우선 과제라는 자민당 주류측의 공세로 이같은 최종 결론을 내렸다는 ‘친절한’ 해설도 붙어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어 수원시장에게 기사내용이 맞는지 문의했다. 한때 이 일이 추진된 적이 있지만 이미 백지화됐다는 설명이었다.
의원축구 행사가 있은지 며칠후 나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에 참석했다. 회의가 시작되기전 한 중동인사가 내게 다가와 “한국은 축구장 건설을 위해 일본에 원조를 요청하느냐”고 물었다.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더니 중동신문에도 요미우리신문 기사가 전재(轉載)됐다는 것이었다.
80년 초에도 외채 위기론이 온 나라에 팽배해 있었다. 당시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은 일본에 ‘안보협력차관’ 1백억달러를 요청했다. 이 일로 우리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한일간에 최종적으로 합의된 40억달러 차관 중 정부개발협력자금(ODA)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 상황이 많이 호전되면서 차관자금은 거의 쓰여지지 않았다. 반면 한국 정부가 일본에 원조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져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 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있었던 88올림픽 유치를 위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도 일본은 이를 최대한 활용했다.
지금의 상황이 당시와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10년 가까운 불황을 겪으면서 자금을 마땅히 굴릴 만한 곳도 없고 일본중앙은행의 이자율은 0%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차관 제공을 마치 큰 선심(善心)인양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한국 국회의원들이 도쿄에 와있는 그 시기에 사실도 아닌 차관제공 기사가 주요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이유에 대한 의문도 지우기 어렵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오부치일본총리가 10억달러 차관을 새로 제의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 자금을 포함한 대외채무를 가급적 조기상환한다고 하는데 추가로 10억달러 차관이 필요한 것인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외교는 형태가 다른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외교는 전쟁과는 다르다. 외교는 상대방과의 기본적인 신뢰관계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발상, 그리고 악의적이지 않더라도 의도적인 보도들이 양국의 선린우호관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전세계인의 관점에서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서게 되는 것을 일본이 내심 꺼리고 있다면 불행한 일이다. 21세기를 여는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은 이제 3년이 남았다. 한국과 일본 양국은 공동개최의 정신을 최대한 살려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