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안성 칠장사엘 갔다 잘생긴 늙은 소나무 한 그루 나한전(羅漢殿)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마다 골고루 잘 벋어나간 가지들이 허공을 낮게 높게 어루만지고는 있었지만, 모두 채우지는 않고 비어있는 자리를 비어 있는 자리로 또한 채우고 있었지만, 제 몸이 허공이 되지는 않고 허공 속으로 사라지지는 않고 허공과 제 몸의 경계를 제 몸으로 만들고 있었다그래서허공이있고 늙은 소나무가 거기 있었다 서러워 말자
―‘98년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현대문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