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에서 상업주의를 배격하고 작가주의의 한 획을 그은 영화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있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의 영상은 너무나 미묘하고 섬세해 불과 연기와 바람까지도 주연을 맡은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었다.
물론 달마 대사는 동쪽으로 가야만 한다. 삶과 죽음의 성찰이 담긴 이 영화에서 동쪽이란 온갖 세속의 욕심을 초탈한 정토, 자신의 욕망을 비워냄으로써 존재의 무게가 더해지는 초월의 땅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반면 호주의 스테판 엘리옷 감독은 영화 ‘프리실라’에서 일단의 남성들에게 서쪽으로 가자고 외친다. ‘프리실라’에 나오는 여장가수들은 ‘드랙 퀸’이라 불리는 게이들. 이들은 그룹 ‘빌리지 피플’의 노래 ‘Go West(서쪽으로 가자)’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막으로 길을 떠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철저히 상식에 엇나가는 화법을 구사하는데, 예를 들면 예수는 흑인이고 야밤에 잔디를 깎고 남자들이 여장을 하는 식이다.
동과 서의 방향 심리학은 이렇듯 미묘하게 다르다.흔히 동쪽은 바름(正)을 지향하고 초월과 명상, 선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반면 해가 지는 서쪽은 중심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장소, 권위에 대해 엇나가는 저항정신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프리실라’에서 드랙 퀸들이 서쪽으로 가는 것도 다분히 주류에서 이탈하겠다는 의도이며, 그들 나름대로는 권위주의적인 가부장제에 항거하겠다는 뜻이 숨어있기도 하다.
서구영화에서 이러한 의미로 서쪽으로 향한 주인공들은 무수히 많다. 다정한 여자친구들끼리의 주말여행이 우발적인 살인과 도주로 이어지는 ‘델마와 루이스’가 그렇고 남자 주인공이 아예 물구나무를 선 채 서쪽으로 간 ‘웨스턴’도 있다.
그러나 결국 극과 극은 통하는 법. 길을 떠난 주인공들은 자기를 찾아 헤매는 고된 여정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동쪽이든 서쪽이든 모든 영화의 길 끝에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욕망과 편견을 벗어던진 진정한 자기자신이 기다리고 있다.
심영섭(임상심리전문가·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