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영화계는 미국 할리우드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보아도 상당히 높은 수준임은 여러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93년 칸 영화제 대상과 이듬해 아카데미상의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영화 ‘피아노’를 비롯해 최근의 ‘샤인’에 이르기까지 국내 영화팬들의 기억에 남는 호주영화를 꼽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국과 비교할 때 호주에서의 영화제작이 쉽지 않겠다는 사실은 지난달 현지에서 만난 몇몇 영화인들과의 대화에서 쉽게 짐작됐다. 할리우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호주적 특색을 가진 원작이 있어야 하는데 좋은 원작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패트릭 화이트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호주문단이지만 문인의 수나 발표되는 작품이 적어 도대체 좋은 원작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22일 문화관광부의 국정개혁보고에서 영상 게임 등 7개 문화산업을 21세기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문화산업이 갖고 있는 폭발적 부가가치를 생각할 때 적절한 계획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문화산업의 밑바탕인 순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책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좋은 원작이 없다면 수백억원을 들여 영상제작시설을 만든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수학 물리 화학과 같은 기초과학의 뒷받침없는 응용과학을 상상할 수 없듯이 순수 문화예술이 받쳐주지 않는 문화산업이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수밖에 없다. 문화산업은 육성돼야 하지만 순수문화진흥이 먼저다. 좋은 원작이 없어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호주 영화인의 탄식이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