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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낙연/「오부치미즘」과 칭찬광고

입력 | 1999-03-24 19:03:00


『최근 이 나라는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잃고 있다. 얼마 전까지 남들이 알랑거리니까 붕 뜨더니 (경제가) 조금 비틀거리자 금방 처졌다.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이쯤에서 한번 흐름을 바꿔보지 않겠는가. 불경기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돌파구를 열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그들을 칭찬하자.』

‘일본을 칭찬하자’는 광고의 앞 부분이다. 일본의 모든 일간신문 17일자의 한복판 2개면에 실렸다. 광고주는 세계굴지의 도요타자동차 소니 도시바 미쓰비시전기 등 59개 기업과 해당 신문을 합쳐 60개 회사. 왼쪽 면은 전후(戰後) 일본의 틀을 만든 ‘원맨 총리’ 요시다 시게루(吉田茂)가 자신만만한표정으로시가를물고 있는 사진.오른쪽면은광고문과 광고주 명단. 2개면 모두 붉은 색 일색이다. 격문(檄文)같다.

“독창적인 것이 없다지만 일본발 만화 게임 영화를 보자. 그 창의성, 썩 잘하고 있다. 요즘 젊은애들은…이라고 불평하지만 그게 아니다. 요즘 젊은애들의 센스, 쓸만하지 않은가. 정치가 나쁘다, 관료가 나쁘다, 상사(上司)가 나쁘다, 교육이 나쁘다…이제 그만두자. ‘틀렸다’는 대합창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으니까. 일본의 강점, 좋은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다시보자. ‘일본을 칭찬하자’는 우리 60개 기업의 공동성명이다.”

이런 희한한 광고가 어떻게 나왔는가. 작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경제기획청장관의 월례경제보고가 시발이었다. 보고의 키워드는 ‘태동(胎動)’이었다.

“경기는 침체상태가 오래 지속돼 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더 한층 악화를 보여주는 움직임과 얼마간의 개선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뒤섞여 변화의 ‘태동’이 느껴진다.”

이것을 일본언론들은 ‘경기의 태동이 보인다’고 압축해 보도했다. 민간연구소들은 턱없는 낙관론이라고 비판했다. 중립적 논평마저 “태동은 임신부만 느낀다”는 식이었다. 사카이야 자신도 나중에 해명했다. “변화의 태동이 있어도 언제 출산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태동이 유산으로 끝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면서도 사카이야는 경기를 좀더 낙관하자고 설파했다. 일본인은 ‘선우후락(先憂後樂·먼저 걱정하고 나중에 즐긴다)’ 정신 때문에 걱정이 너무 많다고도 지적했다. 그의 생각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가 받아들였다. 금년초 국회에서 오부치총리는 시정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냉철한 상황인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비관주의를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 지나친 비관주의는 활력을 앗아갈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확고한 의지를 지닌 건설적 낙관주의다.”

이것을 언론들은 ‘오부치미즘’이라고 표현했다. 옵티미즘(낙관주의)에 오부치를 합성한 것이다. ‘오부치식 낙관주의’다. 여기에는 비아냥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 실제로 ‘회복의 태동’이 시작됐다. 일본이 국가 혁신성(이노베이션)비교에서 7년만에 세계 1위를 탈환했다. 실업률은 전후 최악이고 취업도 ‘빙하기(氷河期)’지만 오랜만에 기업도산이 줄었다. 증권시장도 다시 웃고 있다.

이런 회복세를 확고히 하기 위해 기업들이 손을 잡았다. 크게 보면 낙관주의로 경기를 되살리려는 정부방침에 기업과 언론이 찬동했다. 그 결과가 이번 ‘공동성명’이다. 요즘에는 일본에서도 정부와 업계가 서로를 비판한다. 그래도 결정적일 때는 ‘관민일체(官民一體)’가 된다. 이것이 이번 광고의 진짜 메시지다.

이낙연naky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