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역사」에 대한 독자의 수요에 영합하는 출판경향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하지만 역사를 대중화하려는 노력 자체를 낮게 보지는 않는다. 독자의 흥미를 끌더라도 역사적 연관관계에 대한 전체적 인식과 비판적 안목을 키워준다면 권장할 일이다.
요즘 읽은 이옥순의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푸른 역사)가 바로 이 기준에 근접한 책이다. 지난해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쟁적 핵실험을 목도한 인도사 전공의 저자는 이 사태가 19세기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 그들이 겪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낸다.
19세기 초만 해도 영국은 ‘검은 원숭이’를 ‘갈색 기독교인’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고 인도인을 동화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 사업이 잘 진전되자 영국인들은 오히려 두려움을 표출했고 그러면서 ‘닮음’ 대신 ‘다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 전략은 ‘남성적이고 강한’ 영국이 ‘여성적이고 약한’ 인도를 지배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식민지 인도는 ‘강한 자’를 자기의 일부로 수용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했다. 이것이 곧 ‘인도의 발견’이었다.
강하고 남성다운 힘을 역사와 힌두교에서 발견하는 인도의 정체성 형성과정이 인도근대사의 큰 흐름이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동거해왔던 무슬림을 ‘원수’로 규정하는 움직임이 불거졌는데 그 여파로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돼 지금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다채로운 인용과 구어체 서술이란 ‘향신료’ 덕분에 인도이야기를 즐겁게 읽었지만 간혹 향신료를 과용했다 싶은 곳도 있어 뒷맛이 좀 깔깔했다.
백영서(연세대교수·동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