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많이 몰리는 흥행영화치고 제작 전에 잘될거라고 평가받는 경우는 드물다. 시나리오는 괜찮은 것 같은데, 글쎄…. 그 소재는 너무 위험한거 아냐? 피가 너무 많이 튀지 않냐? 지금 같은 첨단의 시대에 그런 구식이야기가…,쩝. 그런 ‘반신반의’속에 ‘대박영화’는 태어난다.
왜 그럴까? 그건 바로 성공하는 영화가 필연적으로 갖는 ‘새로움’에 있다. 가보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시도,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들을 수준있게 완성했을 때의 가공할 폭발력은 정말 무서울 정도다.
보통 사람들에겐 낯선 것,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다. 그런 것을 냉소적으로 예단하고 평가하려는 관습적 태도가 존재한다. 그런 못난 속성이 정형화된 물건을 만들고 획일적 사고를 전염시킨다.
‘장군의 아들’땐 개봉 전날까지 많은 영화인이 ‘아니 90년대의 시작에 웬 일제시대의 건달이야기야?’라며 코웃음을 쳤다. ‘결혼이야기’땐 비밀스러운 성담론을 낯뜨거울만큼 솔직하게 심지어 히히덕거리며 풀어간 신세대식 사고에 많은 이들이 낯설어했다. ‘접속’은 ‘PC통신이란 딱딱한 소재가 너무 부정적이지 않아?’라는 충고도 꽤 많았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영화 생산자’들이 미리 눈치채지 못하는 흥행요소들을 관객은 귀신같이 알아낸다. 물론 그들 한명 한명에게 물어봐서 똑 떨어지는 정답을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잠재관객 속엔 반드시 해답이 숨겨져 있다.
한편의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고, 마케팅하는 그 길고 고단한 시간은 머지않은 시간에 곧 만나게 될 관객에게 묻고, 또 묻는 질문의 연속이다. 이 영화가 보고싶으세요? 그 배우에 대한 솔직한 의견은요? 개봉 막바지로 치달을 쯤엔 거리에서 스쳐가는 사람들의 길을 막고 이것저것 묻고싶을 만큼 절박한 심정이 된다.
그래서 눈은 가재미꼴이 되고 귀는 한껏 열어놓은 채 사람들의 잡담을 훔쳐듣는다. 대화속에 혹시 내가 만들고 있는 영화얘기는 없을까하고. 개봉 2주전쯤 지하철 역내에 있는 대형 광고판에 영화광고를 한다. 광고물이 내걸리는 첫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앞에 서서 한 두시간쯤 보낸다. 사람들이 얼마나 눈길을 많이 주는지 살피기 위해 초조하게 두리번거리는 나는 마치 ‘아줌마 간첩’같다. ‘조용한 가족’같은 경우 ‘엉 이게 뭐야?’하면서 지나쳤다가 되돌아오는 꽤많은 10대의 청소년들을 봤을 때 나의 가슴은 쿵덕거리기 시작했다.
끝없는 질문의 답은 이제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찾아진다. 반신반의했던 영화가 관객으로 터져나가고 모두 잘될거라고 장담했던 영화가 텅빈 객석과 마주하게 될 때면 뒤통수를 맞은 충격에 빠지기도 하고 기쁨에 들떠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성공하는 영화의 출발은 관습적이고 통계적이고 평균적인 시각에서 얼마나 떨어져있느냐에 있다.
새로운 도전을 얼마나 치열하게 덤볐는가에 따라 영화의 수준이 결정된다. 소수의 성공한 영화인들은 창조적이면서 조직적이고 순수하면서 영리하기도 하며 반짝이는 재기를 버텨낼 수 있는 끈기도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을 꿈꾸지만 요즘엔 꿈꾸기도 전에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진부한 기획자는 아닐까라는 물음에 시달린다.
창조자이자 생산자인 사람들의 눈빛이 도전적일수록, 태도가 치열할수록 세상은 살만하고, 영화는 볼만할 것이다.
심재명(명필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