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포레스트 검프’가 실제 탄생할 수 있을까.
서울 강동구 천호1동 강동구민회관 대강당. 27일 오후7시 강동구립극단의 제2회 정기공연 ‘이수일과 심순애’.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든 1급 뇌성마비장애인인 김주상(金柱相·25)씨가 무대 위에 우뚝 섰다. 객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숨을 죽였다. 김씨는 10여분 동안 김중배에게 버림받은 심순애를 풍자하는 노래를 혼신의 힘을 다해 불렀고 단원들은 김씨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김씨는 가사 한마디 틀리지 않고 반주에 맞춰 정확하게 노래를 불러냈다. 5백여 관객은 아낌없는 박수로 그를 격려했다. 비록 대사 없는 짧은 배역이었지만 김씨에게는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한 소중한 첫걸음이었다.
처음과 마지막 부분 각 10여분씩 모두 20여분의 막간극에서의 짧은 배역을 위해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매주 한번씩 열린 연습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김씨의 꿈은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에 출연해 장애인의 삶을 직접연기하는배우가되는것.
8년 전 연기와 영화공부를 시작한 김씨는 그동안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신체장애와 외로움을 견디며 노력해왔다. 갓난아기 때 장애인수용시설에 맡겨져 부모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할 수 없는 그는 장애와 고아라는 이중의 절망을 연기공부로 이겨냈다. 17세 때 재활학교 연극반에 들어간 김씨는 혼자 연극과 영화공부를 했다. 공연 대본을 직접 쓴 적도 여러번. 그러던 김씨가 정식으로 극단 오디션에 지원한 것은 97년 말. 대사조차 발음하기 힘들었지만 연극에 대한 열의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그를 극단측은 흔쾌히 발아들였다. 발성연습을 위해 정상인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김씨는 지금도 매일 3,4편의 비디오를 보면서 연기공부를 하고 있다.
‘장애인이 배우가 될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포레스트 검프나 제8요일 등의 영화 주인공이 모두 장애인이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않았습니까. 장애인 배역을 나같은 장애인이 맡는다면 훨씬 더 실감있고 감동적인 연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씨의 열성을 받아들인 극단측은 다음번 공연에서는 정식 배역을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팔다리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이 정상인도 쉽지 않은 연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는 김씨.
“솔직히 이번이 마지막 무대가 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러나 배역을 맡겨준다면 장애인들이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또 어떻게 이를 이겨가며 기쁨을 얻는지 최선을 다해 보여드리겠습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