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은 수척해 보였다.
“지난 겨울 장(腸)에 난 혹을 떼어냈어요. 수술하면서 5㎏이 빠졌지. 이제는 괜찮아요. 두곡은 탈 수 있을 듯 해.”
그는 30일 오후7시반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제자들과 함께 연주회를 연다. 제목이 사뭇 회고조다. ‘황병기와 가야금 36년’.
“50년대 제자 이재숙부터 60년대 양연섭, 80년대 서원숙, 90년대 김일륜까지 제자들이 한 곡씩 연주해요. 나도 ‘침향무’ ‘비단길’을 타고….”
제자들은 스승을 말한다. “선생님은 당신 작품을 연주할 때 양보가 없으세요. 꼭 자기가 생각한 식으로 타라는 말씀이시지요. 연주자에게는 까다로운 작곡가죠.”(이재숙 서울대 국악과 교수)
황병기(63). 그는 ‘가야금 창작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인 보배로운 존재(성경린·거문고 연주자·예술원 회원)’로 불린다. 그의 작품은 모두 ‘전통에 뿌리를 지닌 신고전주의와 과감한 실험이 어울린 명작’(박일훈·국립국악원 연구실장)으로 꼽힌다.
그토록 애착을 가지는 작품들. 이번 무대에는 일곱곡이 오른다. 63년작 ‘숲’부터 시대별로 넓게 펼쳐져 있다. “나는 처음부터 실험적이었고, 처음부터 전통적이었으니까….”
시대정신의 선두에 선 사람의 오연(傲然)함일까. 그런 자신감으로 50년대부터 무명예술가이던 백남준과 교유했고, 70년대 초전위적 작품 ‘미궁’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남다른 행보로 이어졌을 터다.
이번 연주에 앞서 그가 눈여겨 봐달라고 권한 작품도 난해하다고 이름난 ‘자시(子時)’.
“입술을 떨어 트럼펫 불듯 하는 부분도 있고, 시 낭독하는 곳도 있고 그래요. 지난해 홍종진의 대금독주회때 청중 틈에서 보았더니 좋아들하더라고….” 연주회에 양념처럼 끼어있는 단하나의 대금독주곡이다. 이번에도 홍종진이 연주한다.
아직은 체력이 달린단다. 그래서 연주회 준비외에는 새 작품 구상도 쉬어 왔다. 그는 몸이 회복되면 성악곡 작곡에 집중하겠다고 말한다.
“가야금이건 피아노건, 음악 속에는 노래가 흘러야 해요. 젊어서 가곡(歌曲·소규모 반주에 의한 시조창)을 배우고 나니까 국악합주의 온갖 성부(聲部)가 다 들려오더라고. 음악의 시작은 노래인 것 같아요.”
요즘 그는 2001년 정년퇴임 이후의 일을 입에 자주 올린다.
“이화여대는 명예교수직도 없으니까 자유롭게 지낼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변화를 싫어해요.”
학생을 가르치면서 작품으로 청중을 만나는 일도 계속하겠다는 암시일까. 02―3703―7382∼4(예음)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