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고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중재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여기에 유고도 조건부 대화의 뜻을 표시하는 등 전쟁확대로만 치닫던 코소보 사태가 처음으로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러시아의 중재노력은 30일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총리의 유고 방문으로 본격화된다. 그의 유고방문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 이고리 세르게예프 국방,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도 함께 간다.
프리마코프 총리는 이번 전쟁이 시작된 이후 중재에 나선 인물 가운데 최고위 인사다. 프리마코프는 91년 걸프전 때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과 이라크 사이를 중재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30, 31일로 예정된 프리마코프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의 ‘매우 중대한 회담’(러시아측 발표)이 주목되는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이에 앞서 예고르 가이다르 전 러시아 총리서리가 이끄는 중재단도 29일 유고를 방문해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면담했다. 이들은 그 결과를 토대로 앨 고어 미국 부통령 등과도 만날 계획이다.
유고와 NATO도 러시아의 이런 노력을 일단 환영했다. 부크 드라스코비치 유고 부총리는 29일 보리스 넴초프 러시아 전부총리에게 “NATO가 공습을 중단한다면 협상에 임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하랄드 분가르텐 NATO대변인은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협상테이블로 유도하려는 어떤 노력도 환영한다”며 러시아의 중재외교에 기대를 표시했다.
러시아는 이번 중재에 성공하면 강대국으로서의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중재노력이 결실을 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NATO는 ‘유고의 인종청소 종식’을, 유고는 ‘NATO의 공습 중단’을 각각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의 국제적 발언권이 크게 약화된 것도 중재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다.
다만 미국 등 NATO국가들도 장기적으로는 전쟁을 끝낼 ‘출구’가 필요하다. 유고 또한 NATO군의 압도적 화력 앞에 무한정 항전하기는 어렵다. 러시아의 중재가 주목되는 가장 큰 이유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