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한국경제의 동반자로 자리잡고 있는 주한 외국기업들에 관한 소식을 매주 금요일 경제섹션에 소개합니다. 국내 자회사에서 실천하고 있는 본사의 선진 경영기법이나 ‘한국속에 세계를 심기위해’ 애쓰는 주한 외국기업인 등을 주로 다룰 예정입니다. 주한 외국기업 및 단체의 행사, 기업인들의 동정도 전해드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나 사람이 있으면 연락바랍니다. 02―361―0348∼9, E메일:gold@donga.com》
OB맥주 직원들은 지난해 9월 벨기에 인터브루와의 합작법인으로 탈바꿈한 뒤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불쑥 자리로 찾아와 업무에 대해 물어보는 ‘파란눈 사장님’을 앞에 ‘세워두고’ 자신은 앉은 채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 과거 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 업무 시간에 담배를 피우며 잡담하는 일도 사라졌다. 회사공용어처럼 된 영어공부는 물론 기본이다.
IMF체제이후 외국기업에 인수된 국내기업들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외국기업들이 국내기업의 기존 조직과 업무환경 등 기업문화를 본사기준에 맞춰가는 이른바 PMI(Post Merger Integration)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
이와 관련, 보스턴컨설팅 이병남부사장은 “합병 자체보다 합병 이후의 통합작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직 슬림화로 군살을 뺀다〓외국기업이 국내기업을 인수한 뒤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조직 슬림화 작업. 한라펄프제지를 인수한 ㈜보워터한라제지는 최근 기존의 부서별 조직을 12개 팀제로 축소 통합했다. 효성바스프를 인수한 한국바스프도 올해 1월 3개 계열사를 통합해 계열사를 없애는 대신 조직을 5개 사업부문으로 나눴다. 세미니스에 인수된 흥농종묘는 기존의 부서를 통폐합해 5개본부 체제로 조직을 단출하게 바꿨다.
이들 기업이 조직 슬림화로 얻은 가장 큰 결실은 결재 과정이 대폭 축소됐다는 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들 기업의 조직 슬림화는 경상비용을 줄이고 신속한 사업결정 구조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고경영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가 책임자〓흥농종묘 직원들은 요즘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낸 뒤 두번 세번 검토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리 말단사원이고 상급자가 결재를 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기안한 사업의 경우 실행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하기 때문.
그 덕에 좋아진 점은 퇴근시간 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 예전에는 부서장의 눈치를 살펴가며 퇴근을 했지만 이제는 업무를 마친 사람들은 오후6시가 되면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올해초 회사를 4개부문으로 나눈 뒤 책임자들에게 해당부문 경영을 맡겼다. 대차대조표 재무제표 관리도 독자적으로 하며 부문별 후속인사는 부문장 주도 아래 실시한다는 방침. 당연히 업무 성과에 대한 책임도 각 부문장의 몫이다.
▽우물안 개구리에서 다국적기업으로〓피인수기업들의 가장 공통적인 변화는 외국어 학습 열풍. 흥농종묘의 한 직원은 “출근 시간이 오전 9시지만 이 시간에 출근하는 사원은 드물다”고 말한다. 세미니스에 인수된 뒤 사원 대부분이 회사에서 실시하는 영어강의를 듣기 위해 일찍 출근한다는 것.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부서내 서류를 모두 영어로 작성하는 곳이 등장할 정도로 영어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한국바스프에선 사내 곳곳에서 영어와 독일어 인사말이 정착된 지 오래.
이들 기업은 또 본사와 자주 의사 교환을 해야하는 상황이므로 영어와 더불어 인터넷도 ‘필수과목’이 됐다. 바다를 건너 대륙간 결재서류가 오가는 글로벌 경영에 편입된 셈.
흥농종묘는 또 다른 부분에서 다국적기업으로 변모한 덕을 크게 보고 있다. 박종엽홍보팀장은 “세계 각국에 세미니스 지사가 있기 때문에 직원들을 수시로 미국 멕시코 스페인 네덜란드 등에 파견해 세미니스의 선진 기술과 선진 경영기법을 배워온다”고 말했다.
〈금동근·박정훈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