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중반까지 2백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휘발유의 공장도가격이 외환위기 여파로 98년 1월에는 5백23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국제 원유가격 하락과 환율 안정으로 지난 3월말 현재 1백98원으로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국내 소비자들은 국제원유가 및 환율인하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한다. 휘발유에 붙는 각종 세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평균 소비자가격은 지난달 31일 현재 ℓ당 1천1백85원이다. 이중 공장도가격은 1백98원에 불과하고 대리점 및 주유소의 마진을 뺀 9백20원이 교통세 교육세 부가세 관세 등 세금이다. 세금이 공장도 가격의 4.6배나 된다.
정부는 휘발유가격 인하 요인을 당연히 소비자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하는 데도 3차례에 걸쳐 교통세를 인상해 이를 고스란히 세금으로 모두 거둬갔다.
IMF 관리체제 이후 내수경기 침체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사상 처음으로 국세 징수액이 감소했는데도 교통세 수입은 7조원으로 전년 보다 25%나 급증했다. 소비자가 누려야 할 이익을 교통세 인상을 통해 정부가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다.
최근 국제 원유가격이 오를 징후를 보인다. 지난달 15개 산유국은 4월부터 1년간 하루 2백10만 배럴씩 감산하기로 결정해 국제 원유가격이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배럴당 10달러에 거래되던 것이 15달러선으로 올랐고 연말에는 20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런 국제동향 때문에 국내 정유사들은 지난달 28일 휘발유 가격을 ℓ당 25원씩 인상했다. 휘발유값 중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77.6%이나 되는 데도 국제 원유가격 급등에 따른 가격 인상요인을 곧바로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자동차 업계 평균 가동률은 40% 이하이고 내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휘발유값을 또 올리면 겨우 회복기미를 보이는 자동차 내수시장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휘발유값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통세를 탄력있게 운영해 더 이상 휘발유값을 인상해서는 안된다.
허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