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을 말로 표현하면 그건 선이 아닙니다. 선을 말했으면 사흘 동안 입을 씻어야 합니다. 선이 있으면 선을 죽여야 합니다. 선을 잊을 때 비로소 선이 가능해집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 선은 언어를 초월한다. 그래서인지 한형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41·철학)의 첫마디부터 알 듯 모를 듯하다. 그가 언어를 통해 선의 본질을 소개했다.
최근 펴낸 한글세대를 위한 선 입문서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여시아문). ‘무문관(無門關)’은 선승(禪僧)들의 화두를 엮은 책. ‘대답할 수 없는 물음(無門)’을 향한 ‘선적인 접근(關)’이란 뜻이다.
현대인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선에 접근할 수 있을까?
“잠자리에 누웠을 때 무슨 생각을 합니까? 대개 ‘나는 누구냐’를 생각하죠. 일상에서 선의 언저리에 근접했을 때라고 봅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버리라는 말. 사람과 사회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나 자신까지 해체해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이다.
서울대 인문대 1학년 시절, 알 수 없는 열병과 혼돈에 휩싸여 반년 넘게 암자를 떠돌았던 한교수. “그때 촌철살인(寸鐵殺人)같은 선의 경구(警句)를 만났습니다. 얼음장같은 깨우침! 비로소 삶의 풍경이 보이더군요.”
그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화두. ‘고민의 끝에 이를 때, 선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