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제10대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된 혜암(慧菴)스님은 지난해 조계종 사태로 월하(月下)종정이 불신임된 이후 조계종을 정상화할 차기 종정으로 첫손꼽혔던 인물.
깡마른 체격에 단호한 눈빛을 지닌 혜암스님은 출가 이후 평생을 참선에 전념해 온 조계종의 대표적인 선승(禪僧)이다. 20년 전남 장성에서 출생, 46년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인곡(麟谷)스님을 은사로 득도(得度)했고 효봉(曉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47년부터 4년간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性徹) 청담(靑潭) 향곡(香谷) 등 20여 스님과 함께 결사안거(結社安居)를 했었다. 이후 혜암은 수십년간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범어사 등 이름난 선방과 태백산 지리산을 돌며 하루 한끼씩 먹으며 드러누워 잠을 자지 않는 ‘장좌불와(長座不臥)’의 수행에 정진해왔다.
성철스님이 입적한 후 93년 해인총림(海印叢林) 방장을 지낸 혜암은 94년부터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을 맡으며 종단개혁에 앞장서왔다.
신임종정 체제가 들어섬으로써 앞으로 조계종은 분규의 상처를 털어내고 종단의 화합을 이루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안게 됐다. 현행 종헌 종법상 종정은 종단정치에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지만 상징적으로 불교계를 대표하는 최고 어른이다.
혜암 종정이 어떤 행보를 취하느냐에 따라 종단 분규의 여파가 계속되느냐, 아니면 그야말로 화합적인 분위기에서 5월22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느냐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혜암스님은 앞으로 정화개혁회의 측 징계자에 대한 사면 감형 등 화합의 손길을 내밀 것으로 예상되나 원칙을 강조하는 스타일로 보아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혜암스님은 고산총무원장과 같은 범어문중 출신이어서 그동안 종단 분규의 고질적 원인이었던 총무원장과 종정간의 갈등은 빚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혜암 스님은 추대 직후 “전 종도의 축하 속에 추대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날을 잡아 기자회견을 갖겠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한 채 이날 오후 6시 김포공항에서 해인사 원당암으로 떠났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