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감독
장선우(47)와 박광수(44).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를 이끌어온 두 중견 감독이 새 봄에 최근 몇년간의 침묵을 깨고 동시에 기지개를 켠다.
장감독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 박감독은 ‘이재수의 난’을 내놓는다. 둘다 지난해 가을에 촬영을 시작, 지난달말에 끝냈다. 둘 다 5월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진출을 추진중이고 영화제 후 국내 개봉할 계획. 그러나 영화는 극과 극만큼 다르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원작인 장정일의 동명소설은 사법부가 음란물로 판정, 작가가 옥살이까지 겪었다. 그만큼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논란이 예상되는 영화. 벌써부터 심의에서 ‘노랑머리’처럼 등급보류 판정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현재 제작사인 신씨네는 영화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장감독 역시 영화와 관련된 인터뷰를 꺼리고 있다.
반면 ‘이재수의 난’은 1901년 제주에서 있었던 민란을 소재로 했다. 박감독은 83년 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를 읽고 15년간 영화화를 준비해왔다. 그같은 뚝심으로 ‘요즘 시대에 흥행이 될까’싶은 무거운 소재를 영화로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기획시대 제작.
두감독은 비슷하게 출발했지만 앞의 두 영화만큼 다른 길을 걸어왔다.
88년 ‘성공시대’(장선우)와 ‘칠수와 만수’(박광수)로 ‘리얼리즘의 부활’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함께 화려하게 데뷔했다. 두 감독이 대학시절 투옥되거나 영화운동을 이끌었다는 ‘운동권’의 배경도 이들이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장감독의 이후 행보는 ‘배반’의 연속.외설시비를 빚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지나 광주항쟁을 그린 ‘꽃잎’을 거쳐 10대의 일탈을 그린 ‘나쁜 영화’로 튀었다. 이 변화무쌍함 때문에 ‘어떤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영원한 나그네’(영화평론가 이효인)라는 평을 듣는다.
반면 같은 평론가가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을 가볍지 않게 이야기한다’고 평한 박감독은 11년간 초지일관 리얼리즘의 외길을 걸어왔다. 역사, 사회문제를 깊이 천착했고 사회의 구석진 곳에 애정의 눈을 돌렸다.
비슷한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감독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둘의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했던 배우 문성근의 의견. “접근방법이 다를 뿐 두 감독 모두 사회에 대한 관심과 이를 작품에서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다고 느꼈다.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감독은 현대사회의 양면성을 각각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주변의 영화인들은 “이들이 결국 한 곳에서 만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한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장선우 감독
△52년생 △서울대 인류학과 졸업 △‘서울예수’(86) ‘성공시대’(88) ‘우묵배미의 사랑’(90) ‘경마장 가는 길’(91) ‘화엄경’(93) ‘너에게 나를 보낸다’(94) ‘꽃잎’(95) ‘나쁜 영화’(97)
▼박광수 감독
△55년생 △서울대 미대 조소과 졸업 △‘칠수와 만수’(88) ‘그들도 우리처럼’(90) ‘베를린 리포트’(91) ‘그 섬에 가고싶다’(9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