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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찬식/어느 「상실세대」의 죽음

입력 | 1999-04-06 19:22:00


한국에서의 실직을 어느 학자는 ‘사회적 죽음’이라고 정의했다. 우리 사회에서 직장은 고용관계를 떠나 공동체적 의미가 강하다. 회사에 소속되는 한 직장과 동료들은 여러가지로 ‘보호막’이 되어준다. 실직은 하루아침에 그 울타리 밖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당장 눈앞의 경제적 문제 말고도 절망감 소외감 같은 심리적 고통이 실직자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대학 졸업후 아직도 취업을 못한 ‘상실세대’들의 처지는 실직자 못지않다. 취직 한번 제대로 못해 보고 꼼짝없이 실업자 신세가 된 이들은 스스로를 ‘무화과’라고 자조한다. 열매는 맺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는…. 이들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분노를 지우지 못한채 오늘도 도서관이나 학원을 전전하거나 이곳 저곳을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 자살의 길을 택한 한 대졸 실업자의 사연은 모두에게 시대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봄빛이 완연했던 휴일에 이 젊은이는 무슨 생각을 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을까. 혹시 곳곳에 피어나는 봄꽃의 화사한 자태에 더 상실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공무원인 그의 부친도 조기퇴직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갈수록 조여오는 실직의 아픔이 ‘가족의 위기’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서글픈 현실이다.

▽요즘 정계에서는 ‘젊은 피’ 수혈론이 거론되고 있다. 패기와 의욕,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필요한 것은 정치분야만이 아닐 것이다. 어떤 통계는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따른 경제적 피해가 10조원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장기적으로 대졸자들의 대량실업은 사회불안요인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게 분명하다. 이런 사회적 손실을 따지기에 앞서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취업기회를 주지 못한데 대해 선배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