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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교육현장 下]떨어진 명예…떠나는 선생님

입력 | 1999-04-06 19:22:00


김모교사(52·여)는 요즘 명예퇴직 문제를 놓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8월말까지로 되어 있는 명예퇴직 희망원을 제출하자니 30년 동안 사명감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온 교단을 차마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서고, 머물자니 학생과 학부모가 더이상 자신을 필요로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러나 올해 새학기에 학교를 찾은 학부모들이 ‘어, 젊은 선생이 아니네’ 하면서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참담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고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하다 올해 2월말 명예퇴직한 정모씨(60)의 퇴직 이유는 ‘창피함’때문이었다. 정씨는 강남 지역의 어느 학교 정문에 ‘우리 학교 교사는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예로 들며 “교원정년단축으로 교직생활이 몇 년 남지 않기도 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더 가르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교단을 등지는 교사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 자진 퇴직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밝히는 퇴직 이유 중에는 ‘교직생활에 대한 환멸’도 들어 있다. 사명감 하나로 교육현장에 몸을 던졌던 교사들이 이제 울면서 교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정년이 아닌 명예퇴직으로 교직을 그만둔 전국의 초중등 교사는 97년 1천6백2명에서 98년에는 5천1백37명으로 급증한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2월 퇴직자)에만 9천3백91명에 이르렀다. 특히 내년부터는 공무원 연금기금의 고갈로 연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는 소문마저 돌면서 8월에는 적어도 1만2천6백여명의 교원이 명예퇴직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명예퇴직 대상이 아닌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한 40대 교사는 최근 반상회에 참석했다가 자신이 교사인 줄 모르는 이웃들이 ‘선생들에게는 돈봉투를 건네야 아이에게 잘해준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그는 “그뒤부터 내가 교사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가능한 한 직업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이같은 현상이 새정부 들어 각종 교육개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촌지 안 받는 교사 우대, 체벌금지 등 교사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조치들이 무리하게 강행돼 전문직인 교사의 권위가 형편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H고 채모교사(48)는 “몇 달 전 교육청에서 수업시작 전에 학생들 앞에서 ‘절대로 체벌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매우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교사들의 이같은 동요가 교사 부족과 교직에 대한 자긍심 상실 등으로 이어져 교육현장을 황폐화시키고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홍성철·이헌진·선대인기자〉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