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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북정책 한건주의 안된다

입력 | 1999-04-08 07:15:00


최근 정부 부처간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충분한 사전조율 없이 한건씩 터뜨리는 일이 잇달아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의 제의와 관련된 논란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6일 북한이 주한미군 성격을 평화군으로 바꾼다면 철수하지 않아도 좋으며 이 문제를 4자회담 의제로 채택하자고 제의했다고 소개했다. 김대통령은 “이는 햇볕정책에 대한 호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엇갈리는 해석으로 혼선을 빚었다.

임동원(林東源)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날 북한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주한미군 ‘철수’를 ‘지위변경’으로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얘기로, 햇볕정책의 성과로 간주하는 김대통령의 말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당국자들은 “대통령의 발언이 공식적인 정보에 근거한 것이 아닐 것으로 본다”며 뭔가 잘못됐을 것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측 제안이 크게 보도되자 다음날 임수석은 과거에도 북한 학자들이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해명했다. 새로운 뉴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마지막 단계에 가서나 한반도내 모든 군사력의 구조와 배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정부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전날의 설명과는 사뭇 다른 얘기다.

그러나 이날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부장관의 발언은 또 달랐다. 4자회담에서 북한 인민군과 우리 국군의 군비통제를 함께 다룬다면 미군의 성격을 지금이라도 논의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는 기존 정부정책이 상당히 바뀌는 것을 뜻한다.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미간의 문제다. 그러므로 4자회담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다.

이렇게 민감한 문제를 정부 부처간 의견조율도 안된 상태에서 대통령이 먼저 언급했다는 점에서 국민은 정부의 대북정책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의 태도변화에 관한 정보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했던 임동원 수석이 나름대로의 정보망을 통해 북한쪽 얘기를 취합해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측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입수됐다면 관련부처간 충분히 협의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게 옳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정보가 불쑥 공개되는 것은 곤란하다.

햇볕정책의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한건주의’유혹에 빠져서는 안된다. 외교안보에 관한 한 고위당국자일수록 정보 공개를 신중하게 해야 하며 그 정책변경을 함부로 시도해서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