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테크노(신시사이저 등 기기에 의한 음악)를 결합시킨 시험곡들. 신해철(31)이 영국 유학 2년만에 내놓은 새음반 ‘모노크롬’에 실린 곡들이다. 국악을 서구 음악의 도구에 담아 세계음반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수록곡도 ‘무소유(無所有)’등으로 우리만의 색깔을 풍겼다.
그는 그룹 ‘넥스트’를 이끌며 92년 이후 한국 록의 흐름을 주도했으나 97년말 그룹을 해체했다. 이후 영국에서 서구 음악을 연구하고선 우리 음악도 세계무대에 진출해야 한다고 나섰다.
―한국 대중음악이 어떻게 해야 세계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가. 음반시장규모로 세계 10위권인데.
“질이 문제다. 우리는 세계 시장의 꽁무니만 따라가고 있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탓이다. 서양 음악에 언어만 바꾸어 노래하는 지금, 한국 음악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나도 데뷔후 10년간 서양 음악을 흉내냈다. 문화 식민지에 사는 한 불가피했다. 그러나 인도나 아프리카는 자신의 민속음악을 테크놀러지 자본 마케팅의 치밀한 전략아래 세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서른이 넘은 이제는 나도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국악인가.
“그렇다. 90년대 월드뮤직(민속음악)바람은 선진국이 제3세계의 문화를 ‘봐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도 뒤떨어져 있다. 그게 국악의 재해석이 필요한 이유다.”
―국악에서 뭘 찾았나.
“국악은 한(恨)이 아니다. 힘도 있고 세월의 흐름을 버티는 오만도 있다. 판소리를 보자. 타고난 목소리를 잔인하게 파괴하는 강렬함이 있지 않은가. 국악은 재해석의 여지가 2백가지쯤 된다. 그중 나는 두어가지 정도 했을까.”
―국악을 대중음악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처음은 아니지 않는가.
“시도가 아니라 논의만 무성했다. 또 많은 이들은 국악의 미래를 부정한다. 국악이 옛것으로 온존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옛것 그대로의 국악이 서양에서 통할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를 서양인들도 그대로 받아들이겠는가.”
신해철은 10여년간 국악을 연구해왔다. 작품 노트에서 본 그의 고민들. △국악기는 서양 악기에 비해 원시적 형태인데 이게 장점인가 약점인가. △대금은 플룻과 유사하다가도 어느 틈에 앙칼진 색소폰으로 변하는데 이를 서양인은 왜 신기해 하는가.
―국악에 왜 테크노를 결합하는가.
“테크노는 장르가 아니라 방법론이다. 국악을 테크노와 접목시킨 것은 서양의 방법론을 우리 것과 배합한 실험이다. 테크노는 더 이상 새로운 소리는 없다는 데서 시작됐고 첨단 기기로 자연계의 파형을 넘어서자는 물결이다. 다만 인간이 미적 감흥을 느끼는 주파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테크노가 풀어야할 과제이긴 하지만. 그러나 간단한 기기로 음악을 생산할 수 있는 장점도 크다. 발표할 공간도 인터넷 등 무한하다. 이런 점에서 테크노는 21세기의 소리일지 모른다.”
신해철은 6월부터 영국에서 활동할 예정. 영국인 매니저 짐 루이스가 “당장 음반을 내자”고 재촉하나 미루고 있다. 그는 “우리 가락이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으려면 작품외에도 자본과 매니지먼트가 결합되어야 한다”며 ‘산업적’ 동반자를 찾고 있다.
그는 최근 영국의 기타리스트 크리스 상가리디 등과 밴드 ‘모노크롬’을 결성했으며 이달 중순부터 전국순회콘서트에 나선다.
〈허 엽기자〉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