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성
학부제는 대학이나 교수들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획일적으로 운영돼온 대학의 틀이 과연 효율적이냐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됐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 입장에서 틀을 짜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일단 특정학과에 입학하면 전과(轉科)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문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적성이 맞지않아 좌절하면서도 억지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실제로 많다.
학부제를 실시하면 이런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큰 모집단위로 입학한 뒤 다양하게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자유로운 지적 탐색과정에서 적성을 찾는 것이 교육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많은 대학들이 학부제를 도입했지만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다. 이 때문에 일부 부작용을 들어 학부제 자체를 반대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
아주대는 95년 국내 최초로 학부제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사전에 20여가지 제도를 도입하거나 보완했다. 학부제를 도입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을 선택하지만 아주대는 4년동안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선택한 강좌의 결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공이 결정된다.
물론 학교가 학생들의 학습을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수강 신청전 반드시 교수와 상담한 뒤 확인을 받아야 수강할 수 있다. 또 튜터제도와 개인별 교육과정 체크리스트 등 보완장치를 마련했다. 학부제에서는 전공학점이 줄어들어 전공이 부실해진다는 우려도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기준 이상 이수하고 전공 심화과정을 밟고 있다.
학부제는 연구의 질을 높이는데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학문의 벽을 허무는 통합적 연구를 통해 다양한 연구가 가능해진다. 이제 모든 대학이 똑같은 학과를 설치하는 백화점식 운영을 지양해야 한다. 특정 학과의 존폐 문제 때문에 반대해서는 안되며 기초학문 육성방안을 별도로 강구해야 한다. 대학의 특성과 실정에 맞게 학부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면 대학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안재환(아주대 교무처장·재료공학)
◆ 반대
마하트마 간디는 7대 사회악 중 하나로 ‘특성없는 교육’을 꼽았다. 오늘날 특성없는 교육 때문에 몸살을 앓는 우리 사회를 지적한 선견지명이라고 본다. 교육부와 대학당국은 교육과 교육현장을 ‘상품’과 ‘시장’으로 보고 학생을 수요자로 간주하고 있다.
최소 전공학점인정제, 복수전공과목과 전과 허용, 학과의 무차별적 통폐합, 입시모집단위의 광역화, 학부제 강요 등은 이런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우선 학부제가 원래 취지보다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각 대학들이 학교 실정에 맞는지 여부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마지못해 모집단위를 조정하는 실정이다. 학부제 시행여부가 대학을 평가하는 교육부의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에 행정 재정적 지원에서 불이익을 받지않기 위해서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학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넓혀주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는 대학을 ‘지식 공장’으로 간주하는 얕은 교육관에 불과하다.
교육의 핵심주체는 교수다. 교육목표는 교수가 세운다. 물론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는 학생들과 함께 의논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학원이 아니며 패스트 푸드점이 아니다. 학생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피자와 햄버거만으로 식단을 짜야 할까. 건강을 위해 기초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하는 것처럼 교육도 다양한 학문이 존재해야 한다.
지금 우리 대학 현실은 어떤가. 학부제가 확대되면서 소위 인기학과에만 학생들이 편중돼 인문학 등 기초학문 분야는 고사 위기에 있다. 또 대형강의가 불가피해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연계교육 과정도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 학과 부재에 따른 소속의식의 결여와 학생들의 학력저하도 문제점 중의 하나다.
학과제는 시장논리를 앞세운 학문경쟁의 위험에서 학문의 본령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학과 단위의 학문체제가 훼손될 경우 교육현장이 시장논리만을 좇아갈 것이기 때문에 균형있는 학문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일부 대학들이 학부제에서 학과제로 다시 전환하는 것은 이런 부작용을 시정한 것이라고 본다.
박영근(중앙대 교수·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