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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전호태著「고분벽화로 본 고구려이야기」

입력 | 1999-04-09 19:54:00


‘거칠 것 없는 당당함과 빼어난 예술혼. 탁월한 미적 감각, 화려하고 세련된 색채, 진취적이고 웅장한 표현, 다양하고 풍부한 소재….’

고구려 고분벽화 하면 으레 따라다니는 말이다. 고구려와 고구려의 고분벽화가 우리 민족정신, 민족문화의 원형(原形)이라는 점에 이론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고구려의 실체에 접근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혹, 막연한 환상이나 언어의 상찬(賞讚)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10년 넘게 고구려 고분벽화에 매달려온 전호태 울산대 사학과교수(40)가 펴낸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풀빛 발행). 고구려벽화를 통해 고구려인들의 다양한 일상문화에서부터 종교 신화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과 사유를 복원해낸 책이다. 아울러 ‘고구려 환상’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저자는 우선 고구려 벽화를 있는 그대로 보라고 조언한다. “위대하다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벽화를 볼 것이 아니라 벽화를 보고 나서 결론을 내려달라”는 주문. 과장하지 말고 흥분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고구려인들의 삶의 모습을 꼼꼼하게 복원해낸 점. 이는 개별 벽화에 대한 단편적인 설명이나 벽화의 양식 고찰에 치중했던 기존 책들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고구려 벽화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꼼꼼하고 차분하다. 안악고분벽화(황해남도 안악군)를 통해 고구려인들이 불고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고기요리를 즐겨 먹었음을 밝혀낸다. 무용총벽화(중국 지안)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서로 음식상을 따로 차렸고 수산리고분벽화(남포시 강서구역)에선 고구려인들이 곡예를 좋아했음을 확인한다.

이 뿐만 아니다. 고구려인들은 밝고 단순한 색상의 점무늬 옷을 즐겨 입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의 기하학무늬 옷을 선호했던 사실, 귀족들은 주로 노란 가죽신을 신었던 사실, 뿔로 만든 나팔을 즐겨 불고 군무(群舞)와 함께 합창을 좋아했던 사실, 다섯조각의 쇠뿔을 이어 탄력성 높은 활을 만들었던 사실 등등.

춤추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합창단원 한명이 능청스럽게 딴짓하는 모습을 그린 무용총 무용도는 고구려인의 여유와 익살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사신도(사방을 지키는 수호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그림)에서 잘 드러나듯 드넓은 상상력과 넘치는 힘이 고구려 벽화의 매력이라는 설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 책에서 일상문화의 복원에 역점을 둔 것은 ‘역사에는 사람의 숨결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관 속에 들어가 죽은 자의 시선으로 벽화를 보고 벽화와 대화하고 싶었다. 고구려인들의 꿈을 읽어내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2백여컷에 달하는 사진을 싣고 설명은 가급적 간단하게 처리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