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고사리 손을 잡고 환한 봄볕 가운데로 나선다. 어디로 갈까? 동물원? 놀이공원?
아니다. 번잡한 나들이행렬에 끼어들기 전에 차창으로 휙휙 스치는 풍경속으로 아이와 조금만 더 걸어 들어가보자. 아빠, 저기 저 나무의 분홍색꽃은 뭐예요? 아, 살구꽃이 피었구나. 엄마 파란 풀은 다 벼인가요? 아니, 저건 보리란다. 가만가만 보리가 아니고 밀이든가?
‘우리 순이 어디 가니’(보리)는 한국 농촌의 봄풍경을 담은 그림책.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용. 윤구병 전북 변산공동체학교 대표가 글을 쓰고 화가 이태수가 그림을 그렸다. 겨우 25쪽 분량이지만 제작에 3년간 공을 들였다.
주인공 순이를 따라 책속의 봄길을 걷다보면 이런 꽃, 나무들이 우리의 봄을 밝히는구나 새삼 발견하게 된다. 엄마가 고개 너머 밭갈러간 할아버지 아버지께 새참 갖다 드리러 가는 길에 순이가 주전자를 들고 따라 나섰다. 집을 나서자 돌담위의 다람쥐가 묻는다. “순이야 어디가니”.
주전자 속의 막걸리 쏟아질라 조심조심 가는데 뽕나무 가지에 앉은 들쥐가 또 묻는다. “우리 순이 어디 가니?”
보리밭의 청개구리, 당산나무 옆의 장승, 무논의 백로, 참나무를 쪼는 딱따구리…. 봄햇살에 깬 나무와 풀, 날짐승 길짐승들이 모두 순이에게 다정히 인사한다. “어디 가니?”
파스텔로 그려진 책속 그림들은 사진보다 사실감이 더 풍성하다. 전형적인 봄풍경과 색감을 묘사하기 위해 경북 청송, 충북 제천등을 두해 봄에 걸쳐 작가와 화가가 취재한 덕택이다. 주변 사물에 대한 관찰력을 키워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 적합한 이유도 그 때문.
보리는 97년 계절그림책 여름편 ‘심심해서 그랬어’, 겨울편 ‘우리끼리 가자’를 펴냈으며 가을편은 올 한해 더 보완해 내년 출간 예정이다. 각권 7,5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