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일부 계열사를 동원해 현대전자 주가를 조작한 뒤 주식을 대량매각해 수천억원대의 차익을 본 것으로 밝혀졌다. 재벌개혁의 실상과 기업윤리의 현주소를 감지케 하는 사건이다. 최대 재벌그룹에 의한 주가조작과 부당거래라니 참으로 한심하고 충격적이다.
금감원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지난해 현대전자 주식을 집중매입하는 방식으로 주가조작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및 정몽헌(鄭夢憲)현대그룹회장 등이 총 6천억원대의 평가이익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시세조종은 반도체 빅딜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 작년 5월25일부터 11월 사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같은 금감원 발표에 대해 현대측은 “통상적인 자금운용의 일환일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주가조작은 공정경쟁을 부정해 증시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독버섯 같은 범죄다. 우선 시세조종에 놀아난 꼴이 돼버린 선량한 투자자들이 광범위하게 피해를 볼 수 있다. 최정상의 재벌이 순진한 투자자들을 우롱하면서 음습한 시장조작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것이 기업윤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주가조작으로 증시를 교란시키면 시장의 신뢰도가 떨어져 많은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
한편 현대그룹이 현대전자를 주가조작의 대상으로 삼은 데 대한 의혹도 풀리지 않고 있다. 현대측은 “현대전자 주식을 취득한 것은 반도체 빅딜 논의가 제기되기 전인 작년 5월말부터 7월초까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빅딜 논의는 여러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이 추진돼 외국 평가기관인 ADL사가 경영주체로 현대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대그룹이 현대전자의 자산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주가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번 사건을 반도체빅딜을 재촉하기 위한 ‘정부의 현대 길들이기’라는 관점에서 보려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금감원이 작년 8월에 증권거래소로부터 현대전자 주가조작혐의를 보고받고도 지금에야 이 문제를 표면화한 것이 그같은 의심을 뒷받침한다. 아무튼 최대재벌의 주가조작혐의를 반년 이상 덮어두었다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을 ‘정부와 특정재벌간의 힘겨루기’ 차원으로 떨어뜨려 문제의 본질을 희석해서는 안된다. 국가신용및 시장질서 훼손 차원에서 다룰 사건이다. 감독당국과 수사당국은 이 사건을 흐지부지 마무리해서는 안된다. 철저하게 조사해 관계자 및 해당기업을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 이런 사건이 유야무야되는 한 재벌개혁은 잠꼬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