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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사상편력]민중떠나 생명거쳐 신인간 도달

입력 | 1999-04-13 19:50:00


“김지하는 언제나 너무 앞서 걸어갔다. 그 때문에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곧잘 제대로 해독되지 않은 채 비난의 대상이 됐다.”(소설가 이문구)

김지하(58)는 과연 시대를 앞질러 가는가?

수 년 간의 침묵을 접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율려(律呂)’라는 새로운 화두를 들고 나온 그. ‘후천개벽’ ‘신(新)인간’ 등 율려운동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서구 합리주의에 기초를 둔 낡은 세계관을 뒤엎는 토속사상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잃어버린 채 신비주의에 경도된 것 아니냐”는 찬반이 뚜렷하다.

그러나 찬반양론 모두의 궁금증은 그가 어떻게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부르던 저항운동가에서 ‘시대의 중심음을 찾아 새로운 인간이되자’고 주장하는 사상가로 변모해 왔느냐는 것. 그 변화의 과정을 가늠케 하는 자료가 햇빛을 보았다. 실천문학사가 최근 출간한 ‘김지하의 사상기행’(전2권)이 바로 그것.

“문학판이고 사회고 모두 민중 민중 하는데 과연 민중이라는 게 마르크스주의의 계급론에만 있는 것인가,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민중의식의 뿌리를 찾아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여행의 취지였다. 여행에 앞서 지하는 이미 ‘내가 죽느냐 네가 죽느냐’ 하는 대결이 아니라 ‘모두의 한을 풀고 서로 사는 운동으로 가야한다(解怨相生)’는 새로운 운동관을 품고 있었다.”

여행을 기획한 이문구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민주화 동지’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생명교 교주’ ‘변절자’ ‘전열이탈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으며 91년 잇따른 대학생분신에 대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주장했다가 민족문학작가회의로부터 제명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면 생명운동―율려운동으로 이어지는 김지하 주장의 핵은 무엇인가? 판소리연구가로 사상기행에 동참했던 문화운동가 임진택씨는 “인간의 몸 자체가 우주 전체의 생명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판소리를 예를 보자. 온몸으로 자신의 기(氣)를 대자연의 기와 일치시키는 것이며 이는 곧 자신을 우주와 일치시키는 체험이다. 김지하가 ‘율려’의 기본이 음악성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사람의 예술적 속성을 통해 전인성(全人性)을 구현하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율려를 통한 ‘신인간 창조’를 주장하는 김지하의 목소리는 과연 새 밀레니엄의 대안이 될 것인가? 또다시 그는 “신수고단한 팔자대로”(이문구) 찬사와 비난의 소용돌이 속에 몸을 던졌다.

▼‘김지하의 사상기행’출간

‘김지하의 사상기행’1권과 2권은 14년의 시차를 두고 만들어졌다. 1권은 84년12월 동학 증산도 등 전통 민중사상의 거점지역을 순례한 기록.

김지하와 소설가 이문구 송기원 판소리꾼 임진택 영화감독 장선우 등이 서울 종로 운당여관을 출발해 △계룡산 △전북 김제 모악산 △남원 교룡산성 △광주 무등산을 차례로 밟았다. 여행 중간에 계룡산의 ‘땡초’ 송명초, 풍수학자 최창조, 소설가 송기숙 등이 민중 사상을 두고 김지하와 ‘일합’을 겨루는 내용이 소설가 이문구의 입담으로 생생하게 기록됐다.

2권의 핵심은 98년11월 ‘생명에서 율려까지’를 주제로 시인 황지우와 김지하가 나눈 10시간의 대담기록. 김지하는 여기서 자신의 성장과정과 70년대 박정희정권과의 대결, 80년대 이후의 사상적 변모 등을 진솔하게 밝혔다. 김지하는 “지금은 고조선의 홍익인간과 같은 신인간이 나와야 한다. 그에 앞서 줏대, 즉 뿌리를 찾아야 한다. 상고사상을 바탕으로 유불선 기독교가 함께 통합하는 동방적 르네상스가 일어나야 한다”고 사상기행의 결론을 맺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