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가 필립공을 처음 만난 것은 13세 때였다. 부왕 조지6세, 마운트 버튼 경과 함께 다트머스 해군사관학교를 찾은 공주는 사관인 필립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당시 18세였던 필립은 버튼경의 조카.
공주 일행이 보트를 타고 귀로에 올랐을 때 필립이 학교실습선을 타고 호위를 하자 조지 6세는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외쳤고 공주는 뱃머리에서 멀어져 가는 실습선을 바라보며 울었다.
두 사람은 47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필립이 그리스 출신이라는 이유로 왕실에서 결혼에 반대했지만 공주는 끝내 자신의 애정을 관철했다.
53년 여왕의 대관식 후 필립공은 “내 임무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여왕을 보위하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여왕부부는 97년에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금혼식을 가져 왕실에서 가장 오랜 금실을 자랑하는 부부가 됐다.
필립공은 젊은 시절 12년간 해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아프리카 야수사냥을 즐겼다. 나이 들어서는 환경분야에 큰 관심을 기울여 세계 3대 환경단체 중 하나인 세계야생기금(WWF)을 이끌었다. 그는 ‘브리태니커의 새들’ ‘야생동물의 위기’ ‘환경혁명’ 등의 책도 썼다. 그가 임원으로 간여하고 있는 단체는 8백여개나 된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