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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체호프의「벚꽃동산」

입력 | 1999-04-15 19:46:00


긴박한 갈등구조와 현란한 볼거리.손님을 끌기 위해 15분마다 새로운 것을 들이미는 ‘쿼터리즘(Quarterism)’의 특징이다. 이 쿼터리즘이 TV에 이어 연극계에도 파고드는 요즘, 호흡이 긴 정통 리얼리즘 연극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는 현실.29일까지 공연되는 서울시립극단의 ‘벚꽃동산’은 이같은 딜레마를 해소하려 애쓴 작품이다. 러시아 리얼리즘의 최고봉인 안톤 체호프의 희곡내용과 계급간 갈등이라는 주제의식 등 관객이 다소 부담스러워할 요소를 탈색시킬 수 있는 각종 장치를 마련했다. 공연 중간 어린이들도 좋아할만한 간단한 마술에 인형을 동원한 복화술이 끼어든다.

러시아에서 체호프를 전공한 제작진(연출 전훈,번역 함영준)은 대사를 단순히 번안만 하지않고 듣기 편한 오늘날의 구어체로 바꿔놓았다. 체호프가 후대(後代)의 연출자 몫으로 남겨놓은 작품 속 여백에도 아기자기한 희극적 요소를 배치했다.

주제의식도 교과서처럼 풀어서 또렷하게 전달한다. 러시아혁명 전후 급격한 시대변화에 무기력해진 귀족계급과 기민한 변신을 꾀하는 프티 부르주아(신진 상인계급). 결국 상인계급이 당시 러시아 구체제를 상징하는 벚꽃동산의 소유권을 따내면서 연출자는 과거의 영화(榮華)에만 집착했던 러시아 사회를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통렬하게 꼬집는다.

지주계급 남매로 분한 최형인(라넵스카야 역)과 정동환(가예프)의 관록이 살아나고, 이항나(아냐)와 여무영(삐쉭)는 새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의 열정을 절제된 동작에 격렬한 대사를 실어 실감나게 그려냈다.

그러나 관객의 ‘쉬운 이해’를 너무 의식한 탓인지 동선(動線)을 단조롭게 처리한 연출 등은 아쉬운 부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평일 오후7시반,토3시7시반,일3시. 02―399―1645.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