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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비즈플라자]「파란눈」사장 한국어 학습바람

입력 | 1999-04-15 19:46:00


“가갸 거겨 고교 구규….”

‘파란 눈’ 사장님들 사이에 한국어 배우기 바람이 불고 있다. 15일 오전 7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국암웨이 스티븐 로빈스 사장(58) 자택. 이날은 로빈스사장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날이다. 매주 화, 목요일은 한국어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기 때문. 로빈스사장은 우선 숙제 검사부터 받고 나서 선생님의 입모습을 따라 열심히 한국어를 되풀이했다.

이날은 특히 부인 자넷 로빈스가 옆자리에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수묵화를 그려 남편과 ‘조화’를 이뤘다. 로빈스사장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한국지사장에 부임한 직후인 지난해 8월. 이제는 회의 시간에 간단한 한국어를 쓸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아직도 가끔 엉뚱한 단어로 좌중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 나라에 맞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정서를 익혀야 하고 문화와 정서를 익힐 수 있는 지름길은 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고 로빈스사장은 한국어 공부의 배경을 설명했다.

과거 부임지에서도 그 곳의 언어를 익히는 일에 열심이었고 그 결과 로빈스사장은 현재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등 모두 6개국어를 구사한다.

올초부터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BMW코리아의 카르스텐 엥엘사장(41)도 “한국에서 제대로 사업을 하기 위해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은 간단한 인사말만 하고 있지만 ‘읽기’실력은 상당히 늘어 신문 헤드라인이나 교통 표지판은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BMW코리아의 한 직원은 “얼마전 신문기사를 번역해 갖다드렸는데 왜 단어 몇 개를 빼먹고 번역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밝혔다.

엥엘사장은 매주 세 번 서강대 한국어학당 강사를 사무실로 초빙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는 “단어 외우는 게 너무 어렵다”며 “일하느라 숙제를 제때 못하는 경우가 많아 선생님께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한국생활 6년째인 호텔 소피텔앰배서더의 조르주 서게사장(45)은 오랜 한국생활을 통해 ‘눈치’로 한국어를 익힌 경우. 사무실에서는 늘 우리말 TV뉴스를 틀어놓고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에도 귀를 바싹 기울인다. 호텔 직원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은 스스로 정한 잣대에 따라 남자일 경우 ‘아저씨’, 나이든 여자는 ‘아줌마’, 젊은 여자는 ‘언니’.

서게사장의 한국어 실력이 잘 드러났던 에피소드 한 가지. 회의시간에 간부들이 사장에게 보고하기에 앞서 매출액을 서로 조정하기 위해 한국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였다. 간부들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서게사장이 갑자기 말을 자르고 들어와 “지금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수치는 틀렸다”고 지적해 ‘사장님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던 간부들을 당황케 했다.

‘파란 눈’ 사장님들이 가장 먼저 배우고 가장 자주 사용하는 한국어는 무엇일까. 주한 외국기업 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빨리 빨리”가 첫손에 꼽힌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