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위한 전국민연금시대. 이를 위한 도시지역 자영업자들의 소득신고가 15일로 마감됐다. 강행과 연기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었던 전국민연금제도는 이로써 일단 출범했지만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불성실신고 등 여전히 적지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전국민연금제도의 조기정착을 위해 현행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3회에 걸쳐 점검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서울시내 대형 재래상가에서 의류도매업을 하고 있는 A씨(34)는 지난해 6억원 어치의 물건을 팔아 2억원 가량의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A씨는 국민연금 소득신고를 하면서 월 1백만원을 벌고 있다고 신고했다. 실제 소득의 20분의 1에 불과한 액수다.
A씨는 “같은 상가에 있는 동료 상인들 대부분이 나처럼 소득을 대폭 낮춰 신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씨를 포함한 동료 상인들이 이처럼 소득을 터무니없이 낮게 신고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제 소득이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 실제로 A씨의 경우 현재 연간 매출액 4천8백만원 미만의 과세특례자로 분류돼 있어 지난해에도 부가가치세를 분기당 16만∼17만원만 납부했다.
연 매출액이 4억∼5억원 정도인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 대형음식점의 주인 B씨(38)도 지난달말 국민연금 소득신고를 하면서 한달에 2백만원만 버는 것으로 신고했다.
B씨는 “동사무소 직원이 국민연금 소득신고액이 세무서에 통보되지 않으니 적당히 해도 된다고 해서 대충 신고했다”며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는 자영업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수입을 일단 낮게 신고하고 보자는 심리는 고소득 전문직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개업한 지 5년째로 한달에 1천만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 의사 C씨(40)는 국민연금 소득신고란에 3백50만원이라고 적어놓았다.
C씨는 “의료보험 적용비중이 낮은 성형외과 산부인과 치과 한의원 등은 소득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해 세무서에 소득신고를 할 때도 실제 매출액의 절반 이하로 신고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말했다.
한달 평균 소득이 4백만원 정도인 카페주인 D씨(36) 역시 국민연금 소득신고를 할 때 실제 소득보다 크게 낮은 90만원으로 적었다.
그는 “장사가 잘 안되는 달에는 소득이 90만원도 채 안 될 때도 많기 때문에 완전히 허위로 작성한 것은 아니다”고 변명했다.
국민연금이 출범 전부터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것은 바로 자영업자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의 이같은 축소 신고 때문.
실제로 동아일보 취재팀이 국민연금 소득신고를 한 전국의 자영업자 1백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조사대상 중 61명이 소득을 실제보다 낮게 신고했다고 응답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도시지역 개업의사들의 국민연금 소득신고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의사들이 신고한 월 평균 소득은 2백84만원에 불과했으며 월 99만원도 못번다고 신고한 의사도 7%나 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조차도 “신고율을 높이는 데만 급급하고 신고의 정확성에는 신경을 쓸 수 없었다”며 “실제 소득을 쓴 자영업자는 50%도 안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은 “수입이 안정적인 봉급생활자들과는 달리 자영업은 경기변동에 따라 수입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일단 소득을 낮춰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영업자들의 신고소득을 실제수준으로 끌어올려 봉급생활자들과의 형평을 유지시키지 못하는 한 국민연금은 불신과 부실의 요인을 안고 있어 계속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홍성철·박윤철·이완배기자〉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