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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정형근의원 인권위 참석 논란

입력 | 1999-04-15 19:46:00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이신범(李信範) 김영선(金映宣)의원의 ‘제네바여행’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제네바에서 열리는 55차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내일 출국할 예정인 이들은 총풍사건 피의자 고문의혹, 국회 529호실 사건 등 지난 1년 동안 여야 정쟁(政爭)의 핵심이 됐던 문제들을 유엔 인권위에 갖고 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선 이들의 여행이, 정의원이 밝힌 것처럼 ‘국회의원 자격으로 인권법과 관련된 자료수집 때문’이라면 하등 논평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이는 국회의원의 정상적인 대외 활동이다. 더구나 정부가 최근 마련한 인권법안에 대해서는 국제인권단체들의 우려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정부가 설립하려는 특수법인 형태의 인권위는 독립성과 권한 활동범위 등에서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국제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국제분위기를 광범위하게 수렴하고 입법의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규명해야 할 문제를 국제무대에 풀어 놓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총풍사건과 관련된 고문 시비에 대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국회 529호 사건도 ‘정치사찰’의 실체가 규명되지 않아 유엔인권위에 호소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총풍사건의 경우 고문혐의자에 대한 수사는 진척이 없을망정 총풍피의자들에 대한 재판은 진행중이다. 이 사건과 관련된 고문시비도 앞으로 법정에서 어느정도 가려질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아직은 국내에서 사실 규명에 보다 강도 있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순서라고 여겨진다.

특히 정의원의 유엔인권위 참석을 놓고 정치권 일부에서 비판적인 말이 나오고 있다. 정의원은 구(舊)안기부 수사국장 당시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서경원(徐敬元)전의원과 사노맹 사건의 박노해씨 등을 고문한 ‘장본인’이라는 증언이 당사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국민회의측은 ‘고문과 인권탄압의 장본인이 유엔 인권위에 참석하는 것은 인권에 대한 모독이자 국가망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정의원의 고문사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 뭐라고 단정적인 말은 할 수 없지만 정의원 스스로 자신의 과거행적을 되돌아 보고 신중한 처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의원 등의 출국을 제지하거나 유엔 고등판무관실에 정의원의 인권위참석 부당성을 호소하려는 국민회의의 움직임도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국내 정치권의 싸움을 연장시키는 듯한 추태를 드러내면 결국 나라 망신만 된다. 우리의 집안싸움을 들여다보는 외국의 눈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