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환란(換亂)의 와중에서 조개구이전문점이 들불처럼 번진 적이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조개구이전문점은 그러나 1년도 채 안돼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한정된 수요에 공급이 지나치게 많았던 탓이다.
남 따라하기 욕심은 조개구이전문점이나 재벌이나 차이가 없다.
66년 시작된 한국의 석유화학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서 눈부시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재벌들이 보여준 태도가 그랬다.
72년 10만t 규모의 나프타분해공장(NCC)이 울산에 완공됐고 79년에는 호남에틸렌(현 대림산업)이 여천에서 35만t 규모의 NCC를 가동했다.
80년 선경그룹(현 SK)이 대한석유공사를 매입했고 이어 한국화약그룹(현 한화)이 업계에 참여할 때만 해도 사정은 괜찮았다.
그러나 현대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이 공급과잉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집요한 로비 끝에 90년 정부로부터 투자자유화조치를 이끌어내 91년 공장가동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그로부터 8년. 현대는 3조2천여억원, 삼성은 2조4천8백여억원의 빚을 지고 정부주도의 ‘빅딜’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들은 현재 5조원을 웃도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채를 금융기관이 ‘출자전환’토록 해달라고 정부에 떼를 쓰고 있다. 받아들여질 경우 빚더미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반면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던 선발업체 대림과 한화는 14일 정부에 한마디 도움요청도 없이 제살을 도려내는 ‘자율 빅딜’에 합의했다.
약한 힘을 탓하며 소리없이 지내온 ‘피해자’ 대림과 한화의 전격적인 ‘자율 빅딜’과 정부의 비호아래 일을 저지르고도 모자라 또다른 ‘특혜’를 요구하고 있는 최대 재벌들의 지지부진한 ‘타율 빅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재벌들의 뱃심에 국민이 언제까지 시험만 당하고 살아야 하는지 걱정이다.
이훈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