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움직이면 한국 미국 중국 일본도 긴박하게 움직인다. 북한이 지난해 8월 대포동미사일을 발사했을 때와 94년 한반도위기설이 증폭됐을 때도 그랬다. 15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미중일 4국의 숨가쁜 막후 움직임을 생생하게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의 대포동미사일 발사 직후 일본은 즉각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분담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다음달인 9월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일본 외상은 미국 뉴욕에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 시달려야 했다.
올브라이트장관은 “일본이 돈을 내지 않으면 미국의회도 북한에 대한 중유지원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KEDO는 깨진다”고 경고했다. 이런 협박성 발언에 고무라가 졌다. 귀국직후 고무라는 “KEDO는 (북한을 달랠 수 있는)가장 현실적이며 유효한 수단”이라고 바꿔 말했다.
미국의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현지를 방문한 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의원은 예상 밖으로 강경한 미국의 ‘북한징계론’에 놀랐다. 그는 미국의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 특사 등을 만나 “나쁜 것은 북한이지만 무력충돌만은 피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중국은 미국 일본 양쪽으로부터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뒷짐 작전’으로 일관했다. “직접 얘기하라”거나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상투어를 되풀이했다.
94년에도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일본측에 극비문서 ‘5027호’의 지원계획표를 건네주며 협조를 요청했다.‘5027호’는 북한의 선제공격을 가상한 한미연합사의 반격계획서. 미국과 일본은 실무자급 회의를 열어 깊숙이 논의했지만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과 김일성(金日成)북한주석의 면담으로 긴장이 해소되면서 물밑으로 잠복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