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의 간판 전문경영인이 주가조작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대주주가 허위사실을 광범위하게 유포한 다음 자사주를 처분, 1백억원대의 차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있다.
그동안 거의 모든 재벌이 이른바 주가관리란 명목으로 공공연하게 주가 조종에 관여해왔으나 감독당국이 강력한 처벌의지를 가시화함으로써 앞으론 어렵게 됐다.
금융감독원관계자는 “각종 내부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불법 주식거래는 그동안 많이 적발했지만 재벌계열사가 조직적으로 다른 계열사 주가상승을 포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대는 주식시장의 ‘떴다방’〓금융감독원 조사결과 현대중공업은 현대전자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하루에 최대 1백49차례나 ‘사자’주문을 냈다. 어떤 날은 현대전자 하루 거래량의 93.2%를 매집하는 등 ‘통 큰’ 짓도 서슴지 않았다.
미리 사고자 하는 목표수량을 정해놓고 조금씩 나눠 매도호가(呼價)보다 높은 값에 매수주문을 내는 것은 주가조작의 고전적 수법. 그렇지만 현대의 경우처럼 노골적인 ‘작전’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그룹은 ‘주가관리’차원에서 비슷한 수법의 매매를 하곤 하지만 현대는 특유의 ‘밀어붙이기’를 불사, 이번에 크게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작년부터 “현대는 주식시장의 ‘떴다방’”이라는 말이 돌았다고 덧붙였다.
▽단기매매로 1백억원 차익〓금융감독원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경기화학공업 대주주 겸 대표이사 권회섭(權會燮)씨는 자사주를 단기간에 매매해 1백억원대의 막대한 시세차익을 취했다. 권씨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회계처리를 조작한것은 물론 언론과 기업설명회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광범위하게 유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농업용비료 생산업체인 경기화학은 96사업연도, 97반기사업연도, 97사업연도의 재무제표를 작성하면서 매출채권과 재고자산 금액을 과다계상하는 방법으로 당기순익을 조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97년 2월부터 8월 사이에 유포된 허위사실들은 △경기도에 3천억원을 투자해 20만평의 대규모 유통센터를 건립한다 △소회사제도를 실시해 경비가 20% 절감되고 생산성이 향상됐다△97년 당기순익이 40억원으로 전망되며 주당 장부가치가 3만1천7백원에 이른다 등으로 금감원이 확인한 이런 내용의 신문보도와 기업설명회만도 최소한 아홉차례에 달했다.
이처럼 주가상승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유포. 확산시킨 결과 경기화학의 주가는 97년 2월 28일 7천1백원에서 8월 8일 1만9천원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 망해도 오너는 산다〓거평그룹 부도직전 이 사실을 미리 안 오너가 갖고 있던 주식을 내다 판 것은 기업은 망해도 오너는 산다는 ‘통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예.
거평그룹 나승렬(羅承烈)회장은 주력사인 대한중석의 해외 영업양도가 무산돼 부도를 피할 수 없게 되자 작년 4월16∼5월6일 대한중석 주식 1백92만주, ㈜거평 주식 82만주를 8개 차명계좌를 통해 매도했다. 그는 이로써 10억9천만원의 손실을 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국주강 엔케이텔레콤 등의 사례에서도 부도사실을 미리 알 수 있었던 특수관계인들은 모두 빠져나가 애꿎은 일반 투자자들만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