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윤선거(尹宣擧)는 3년 뒤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도에 들어가 있었다. 강화도가 청군(淸軍)에게 함락당하자 결사항쟁을 피하고 평복차림으로 섬을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으나 부인은 자결을 하고 말았다.
부인만도 못한 비굴했던 자신의 처신에 부끄러움을 느낀 윤선거는 수차에 걸친 조정의 부름에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부끄러움을 씻는 일로 평생을 보냈다. 그는 고향에서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념하다 생을 마쳤다.
우리 조상들은 윤선거처럼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생명처럼 중히 여기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을 인간의 으뜸가는 도덕적 덕목으로 여겼다. 도리에 맞는 행동을 분별할 줄 아는 선비정신이 있었다. 그러기에 계급적 차별이 심한 소수 지배의 봉건사회에서 선비들이 백성들에게 귀감이 되고 교훈이 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요즘 정치판은 참으로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잘못된 정사를 바로잡아야 할 국회의원들이 나라의 세금도둑을 봐주질 않나, 정보정치의 핵심간부로 활동하며 고문 논란을 빚은 한 의원은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해 고문사건 등을 폭로하겠다고 나섰다.
특히 나라를 온통 빚더미에 올려놓고서도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또 재보선의 타락상을 보면서 국민회의가 여당이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행태를 반복하는지도 걱정스럽다.
예부터 ‘나라를 지키는 네가지 근간(국유사유·國有四維)’이 바로 예의염치였다. 그리고 선비들은 나아가고 물러서는 진퇴의 처신이 항상 올바랐다.
요즘 정치인들에게서는 예의염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부끄러움을 씻으려는 노력은커녕 도리와 의리를 저버리고 후안무치한 이기적 욕심만을 추구한다.
황병근(우리문화진흥회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