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하면 여성이었다. 여성의 자기 표현 욕구가 커짐에 따라 노출의 정도도 커지고 있다. 한편 여성의 노출은 남성의 관음주의적 시선과 깊은 내연의 관계를 맺는다.
‘벗는 영화’라는 말도 있듯이 대중문화의 세계에서 여성의 육체가 점하는 지위는 그야말로 특권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판단도 이제는 단견이다. 언제부턴가 남성의 육체도 노출화의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쇼프로에서 근육질의 가수가 여보란 듯이 몸매를 과시한다. 옷단추는 아예 형식이다. 상의 자락을 여미지 않은 채 가슴 속을 훤히 보여주는가하면 청바지를 반쯤 내린 남성 모델이 몽롱한 표정을 취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여성지에서도 벗은 남성의 모습을 쉬 만날 수 있다. 이를 두고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리라.
하나는 남성의 육체도 ‘소비의 가장 아름다운 대상’(장 보드리야르)에 편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여성의 몸매만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느냐, 이제는 남성의 몸매도 구경하자는 식의 논리라면 논리다.
이는 육체의 소비에 관한 한 여성적 모델과 남성적 모델이 동등해지는 현대 소비문화의 추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판 ‘고개 숙인 남자’의 상상적 대용물이라는 점이다.
날카로운 눈과 딱 벌어진 어깨, 탄력 있는 근육으로 요약 가능한 남성미의 모델은 얼핏 남성다움의 권위 내지 폭력을 조장하는 것으로 비치기 쉽지만, 실제로는 몰락하는 남성의 현주소를 역으로 보여줄 따름이다.
근육질의 매력남을 엿보는 남성도 실은 괴롭다. 그것은 비아그라도 못된다. 차라리 ‘사이버 비아그라’라고나 할까.
김성기(계간 현대사상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