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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향기]나희덕「어린것」

입력 | 1999-04-26 19:32:00


어디서 나왔을까 깊은 산길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새끼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맑은 눈빛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고집할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어린것들은

내 앞에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

젖이 차올라 겨드랑이까지 찡해오면

지금쯤 내 어린것은

얼마나 젖이 그리울까

울면서 젖을 짜버리던 생각이 문득 난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난만한 그 눈동자,

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고

갈 수도 없다고

나는 오르던 산길을 내려오고 만다

하,물웅덩이에는 무사한 송사리떼

―시집‘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작과 비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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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산에서 어린 다람쥐를 만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어린 것을 보고 굳었던 젖이 핑그르르 도는 모성은 아무나 지닐 수 없다. 그게 시심이 아닐까. 그 마음이 올라가려고만 하는 나를 내려오게 한다. 가슴 아파라. 어린 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고 한다. 자기 자신한테조차도. 그래서 지금 다른 것들이 새 목숨을 얻었으리라.

신경숙(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