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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용정/勞使政 새틀짜야

입력 | 1999-04-27 19:05:00


서울지하철 노조가 26일 밤 전격적으로 파업을 철회했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 파업투쟁 8일만이다. 한국통신노조 파업유보 선언에 이어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철회로 파국을 향해 치닫던 노동정국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의 정면충돌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가까스로 모면한 셈이다.

▼ 고비는 넘겼지만 ▼

이로써 노정(勞政)갈등의 한 고비는 넘겼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도 예측불허다. 정부의 강경대처로 공공연맹의 파업의지가 한풀 꺾였으나 민주노총은 ‘여기서 물러나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5월1일 노동절 총파업 등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파업투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실직자, 도시빈민, 진보적 시민단체, 한총련 등과의 연대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고립화작전에서 벗어나기 위해 범민중투쟁으로 전선을 확대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전략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계의 파업투쟁은 반(反)정부 정치투쟁으로 번져날 우려가 없지 않다. 이같은 상황이 어떤 새로운 위기를 부를 것인가. 그에 따른 정치 사회적 혼란은 말할 것도 없고자칫걷잡을수없는 공동체의 파열로 이어질수도있다.

정부가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정간의 갈등과 대립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기보다 더욱 복잡하게 꼬였다고 할 수 있다. 불법파업 엄단이라는 ‘법과 원칙’이 여론의 지지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노동배제적 구조개혁에 대한 정당성과 유효성에 대한 의문은 완전히 불식된 것이 아니다. 민노총의 이번 파업투쟁은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경제주체간 고통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은데 대한 노동자들의 자구행위이자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의 양극화현상이 심화되는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본격적인 저항이라는 인식도 없지 않다.

여기에서 정부의 고민은 이어진다. 집권 초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운영의 기본이념으로 내세운 정부로서는 구조조정과 노사정 협력을 조화시켜야 할 필요와 당위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 결과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회협약기구로서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질서를 이끌어내는 국민적 합의형성기구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노사정위는 ‘경제위기 극복과 재도약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이끌어 냈다. 90개 항목의 의제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성실한 이행이 뒤따르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로 노사정간의 불신이 증폭되었고 급기야 노동계가 탈퇴선언을 하고 기왕에 합의한 사항의 재교섭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에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그 밑바탕에는 노동계의 집단이기주의와 노동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상급노조의 취약한 리더십과 정책역량의 부족 그리고 참여적 파트너로서의 조건마저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재벌해체와 공기업의 구조조정을 주장하면서 정리해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도덕적 해이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고통분담과 협력을 ▼

우리의 노사정은 영국의 신노조운동과 영국노총(TUC)의 노사 동반자관계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영국의 신노조운동은 노동시장에서의 공평성과 유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 노조의 동반자관계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기업 경쟁력 제고와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함께 추구하자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그중의 하나가 노사정 관계의 기본틀을 다시 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성찰이다.

노사정위 각 주체는 고통분담과 협력을 전제로 한 노사정협약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노사정 협력은 우리 공동체적 가치를 지금의 경제위기 극복에 접목하는 길이자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의 정치 경제 사회체제를 가름하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신중도(新中途)노선으로의 전환을 위한 모색이다. 우리사회가 자본의 세계화에 무비판적으로 종속되고 ‘20 대 80’의 각박한 사회로 나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구호나 수사(修辭)에 그쳐서는 안된다.

김용정 (논설위원)yjeong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