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를 추천하고 법관들에 대한 평가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예를 보더라도 변호사협회가 대법원장을 추천하는 나라는 없다. 변호사단체의 사법평가가 행해지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변호사단체가 독자적으로 대법원장 임명절차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으로부터 대법원장 후보자 평가를 의뢰받을 때에만 의견을 비공개로 전달하고 지명된 후보자에 대해 인사청문회에서의견을 개진할 뿐이다.
각국의 변호사단체가 대법원장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 것은 변호사는 분쟁당사자 일방의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이라서 후보자 추천이 공정하고 객관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변호사단체도 이익단체인 만큼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후보를 추천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대한변협이 각국의 관행을 무시하고 대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려는 것은 헌법상의 대법원장 임명절차에 반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뜻과는 다른 후보를 추천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법관에 대한 평가도 공정성 객관성을 갖기 어렵고 재판에 대한 불만표출이나 간섭의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성이 있다. 부당한 평가내용이 공개되는 경우 법관의 명예를 훼손함은 물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려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이 현저하다.
한국과 같은 대륙법계 국가인 독일 프랑스 일본은 물론 영미법계 국가인 영국에서도 변호사단체에 의한 법관의 평가가 전혀 행해지지 않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미국에서만 변호사단체가 법관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으나 미국은 변호사에서 판사를 충원하는 시스템으로서 내부평가도 없고 인사이동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한국의 법관인사 제도와는 본질적인 면에서 다르다.
법관인사 제도의 목적은 법관의 신분보장 및 재판의 독립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고 지원하는 데 있다. 현행 헌법이 법관 인사권을 대법원장에게 전속시킨 것은 이 제도가 그러한 목적에 가장 합당하다는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터잡은 것이다.
사법부는 더 나아가 법관 근무평정 제도를 시행하고 법관인사위원회의 지문을 거치게 하며 모든 인사관행을 확립시켜놓음으로써 법관인사의 객관성 공정성 안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기도 하다.
법관인사는 사법부 독립의 핵심이다. 오늘의 사법부는 정치권력을 비롯한 어떠한 외부 기관이나 세력으로부터 독립돼 있다. 이러한 때에 헌법이 예정하고 있지 아니한 외부기관이 법관인사에 개입하려 하는 것은 적정한 법관인사에 유익하지 않을 뿐더러 사법부 독립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대한변협의 추천이나 평가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고유권한을 간섭하는 것으로서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지금은 오히려 사법부와 변호사단체가 법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한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