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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Business]유로화와 美경제부침

입력 | 1999-04-27 19:44:00


유럽연합(EU)의 통화인 유로(EURO)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미국 달러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세상이 태어난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유로는 생각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돈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사는 지금까지 유럽 상인들이 보낸 유로화 신용카드 요금 청구서가 5천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유럽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유로로 된 여행자 수표보다 달러로 된 여행자 수표를 현금화하기가 훨씬 쉬웠다고 말하고 있다. 유럽의 중앙은행들도 보유외환을 거의 대부분 달러로 관리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지금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이들이 대학을 마칠만큼 시간이 흘러야 유로가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러의 지배에 도전할 수 있는 유로의 잠재력은 상당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달러가 영국 파운드를 제치고 세계 정상에 선 이래로 달러를 제칠 수 있는 화폐는 없었다. 지금까지 달러의 가장 큰 라이벌은 독일의 마르크화와 일본의 엔화였으나 두 나라는 경제와 인구면에서 모두 미국에 뒤진다. 그러나 유로는 그만한 경제규모와 인구를 모두 갖고 있다.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인 마틴 펠드스타인은 21세기가 되면 미국과 유럽이 세계경제의 지배권을 놓고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로화를 통해 유럽의 결속이 더 강해지면 정치에도 그 영향이 미칠 것이다. 어쩌면 미국인 대신 프랑스인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책임자 자리에 앉게 될지도 모른다.

유로의 세력 확장에 우선 관건이 되는 것은 미국의 무역 적자다. 미국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새로운 투자 대상을 물색하는 투자자들에게 강력한 서유럽 경제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국제금융연구소의 윌리엄 클라인은 “시장이 미국의 적자폭 증가에 관심을 돌리게 되면 상당수의 투자자들이 유로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유로화로 은행의 계좌를 열고, 여행자 수표를 사고, 신용카드대금을 지불할 수 있다. 2002년이 되면 새로 문을 연 유럽중앙은행이 유로화 동전과 지폐를 내놓으면 현재 통용되고 있는 각국의 화폐는 사라질 것이다.

유럽이 하나의 연합으로서 유로화로 된 채권과 증권을 발행하게 되면 미국의 채권만큼 큰 시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배리 아이첸그린은 “유럽의 금융시장이 성장해서 안정성과 통일성이 입증되면 유로화는 점점 달러의 라이벌로 자리를 굳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몇십년이 걸릴 것이다.

유로화는 그리 좋은 시기에 태어나지는 않았다. 유로화가 첫 선을 보인 99년 1월 1일 당시 미국 경제는 3년째 활발한 성장을 보이고 있었고 서부유럽의 경제성장 속도는 느린 상태였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80년대처럼 인플레이션 재정적자증가, 부동산 경기의 거품붕괴 등을 다시 한번 겪는다면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고 21세기는 미국의 시대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이 공유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