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올해 처음으로 27일 열린 정재계간담회는 청와대의 재벌개혁 의지를 재차 강조하고 재벌 구조조정에서 채권단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자리. 정부는 간담회를 수차례 연기하면서 반도체 빅딜과 현대 대우의 ‘충격적인’ 구조조정안을 유도, 이날 ‘평가회’의 의미를 극대화시켰다.
5대 재벌은 뼈를 깎는 자구계획을 설명하면서 ‘연말까지 기다려달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줄지는 아직 미지수. 지난해 ‘12·7’ 청와대회동에서 합의한 빅딜 일정이 2∼4개월씩 미뤄진데다 재무구조개선도 험로(險路)가 예상된다.
청와대와 관계부처 일각에서는 ‘계획은 좋은데…’라며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노동계의 춘투(春鬪)까지 의식해야 하는 정부는 채권은행을 통한 우회적인 재벌압박을 공언하고 있다.
▽정부, ‘말보다 실천이 중요’〓정부가 5대그룹 재무구조 개선추이를 주채권은행을 통해 매월 점검하려는 것은 고강도 자구계획이 말로만 그칠 경우 오히려 경제위기 극복에 장애가 된다는 판단 때문.현대 대우 등은 정부의 자산재평가 불인정 방침에 따라 2,3년 뒤로 미뤄놓았던 자산매각을 올해 계획에 대거 포함시켜 실현여부에 관심이 쏠려있다. 월별 점검은 5대그룹 대부분 구조조정계획을 하반기에 집중시켜 ‘시간벌기’ 의혹을 사고있는 점을 감안한 것.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이날 채권은행장들에게 여러차례 ‘주인의식’을 강조한 것도 5대그룹이 해외 자산매각시 ‘값이 안맞는다’며 버티기작전을 벌이는 것을 차단, 구조조정을 앞당기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빅딜,막판에 ‘삐끗’조짐〓12·7 회동에서 관심을 모았던 5대그룹 빅딜은 막바지 단계. 당시 경영주체조차 결정치 못했던 반도체빅딜은 현대와 LG그룹이 최근 인수금액 협상을 타결함에 따라 전자를 제외한 8개업종이 실사중이거나 채권단에 낼 경영개선계획을 짜고 있다.
그러나 삼성자동차의 인수조건을 둘러싸고 삼성과 대우측 이견이 만만찮아 이달내 양수도계약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유화빅딜도 현대가 삼성종합화학과의 통합협상에서 ‘추가출자분 2천7백억원을 낼 수 없다’고 버티고 있어 자칫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다. 강봉균(康奉均)청와대경제수석은 이날 “유화빅딜이 타결되지 않으면 부채상환 유예조치를 철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험난한’ 재무구조 개선〓5대그룹의 전체 부채는 재벌개혁 원년인 지난해 오히려 늘었고 자본대비 부채비율도 지난해말 386%로 계획치를 66% 포인트 넘겼다. 외자유치 등 자구노력(98∼99년 1·4분기)도 22조1천억원으로 목표대비 81% 수준이고 외자유치도 목표액(98억6천만달러)의 40%(38억8천만달러)선.
LG SK 삼성의 재무구조 개선이 순조로운 반면 현대는 부실기업 인수과정에서 부채가 쌓이고 대우는 뒤늦게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자금흐름이 다소 악화, 최근 고강도 구조조정계획으로 ‘급한 불’을 끈 상태. 이 때문에 정부의 월별 이행상황 점검도 두 그룹에 집중될 것이 확실해보인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