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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낙연/反엘리트주의 人事

입력 | 1999-04-28 19:36:00


인사(人事)를 보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출신지역부터 따지는 버릇은 단세포적이다. 인사에는 엘리트주의와 반(反)엘리트주의라는 두 조류가 있다. 미국대통령들의 인사도 그랬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엘리트주의에 철저했다. 1932년 대통령선거에서 루스벨트는 컬럼비아대 일류 교수 레이먼드 몰리, 렉스퍼드 터그웰, 애돌프 벌 2세 등을 선거고문으로 위촉했다. 이들을 언론인 존 키런이 브레인 트러스트라고 불렀다. 이것이 브레인 트러스트의 기원이다. 이들은 루스벨트 취임후에도 광범한 정책수립을 맡았다. 뉴딜정책도 이들의 작품이었다.

전후(戰後)에는 존 케네디가 엘리트주의의 극치를 이뤘다. 모교 하버드대 등 동부 아이비리그 출신의 지성파 인사들을 권력중추에 앉혔다. 맥조지 번디, 시어도어 소렌슨, 아서 슐레진저 2세 등이다. 특히 슐레진저 2세는 당대 최고수준의 역사가이며 문장가였다.

케네디 이후에는 반엘리트주의가 더 많았다. 그래도 조지 부시는 엘리트주의에 기울었다. 동부 아이비리그 출신과 WASP(백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를 요직에 배치했다. 반대로 빌 클린턴은 반엘리트주의(대중주의)를 분명히 했다. 클린턴은 첫 내각에 흑인 4명, 히스패닉 2명, 여성 5명을 입각시켰다.

한국의 인사에도 비슷한 두 흐름이 있다. 군사정권들은 문민을 충원하면서 엘리트에 상당히 집착했다. 정통성 콤플렉스나 군인 중용을 호도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대통령이 서울대 원로 철학교수 박종홍씨를 청와대 특보로 기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박씨가 어떤 기여를 했느냐와는 별도의 문제다. 전두환대통령 시절에 아웅산에서 숨진 사람들의 상당수도 고급두뇌였다.이에 비해 김영삼 김대중대통령의 인사는 다분히 반엘리트주의적이다. 교육학박사나 일류대총장이 맡곤 했던 교육부장관에 투옥과 복학을 거듭한 운동권출신의 이해찬씨를 기용한 것도 그렇다. 이장관의 실제 업무성적과는 별개의 문제다. 더욱 두드러진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정통성에 대한 자신감이나 대통령의 오랜 인사습관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두 조류에는 장단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엘리트주의적 진용은 국민에 대해 권위를 갖는다. 원리원칙에 강하다. 각자가 자기업무를 완벽히 수행하려 한다. 그러나 때로 현실에 어둡다. 역풍(逆風)이 불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케네디는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들에게 휘둘려 월남전의 비극을 낳았다는 후세의 비판을 받고 있다. 부시 말기의 참모들은 클린턴 선풍 앞에서 지리멸렬했다.

반엘리트주의적 진용은 여론에 강하다. 인사권자에 충성스럽다. 개혁국면에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곧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다. 지식인과 중산층의 냉소를 부르기 쉽다. 클린턴 초기의 중산층 증세와 의료보험 확대가 백인중산층의 반발을 불러 94년 중간선거 패배로 이어지자 클린턴정부는 정책기조를 바꿔 버렸다. 지금도 클린턴은 지식층의 냉소를 받고 있다.

인사도 선택이다. 선택은 어느 한쪽의 포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김대중정부의 인사도 마찬가지다. 선택의 비용을 이미 치르고 있다. 반엘리트주의의 약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사란 묘한 것이다. 정권의 성패는 결과가 말하지만 인사는 정권의 인상과 정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처음부터 영향을 준다. 정부에 대한 각계의 태도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인사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낙연 naky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