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上海)에 살다보면 역사란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니라 괴어 있는 시간, 미래를 향해 이어진 시간임을 깨닫게 된다.
4월 15일 상하이 훙차오(虹橋)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기 화물기의 추락 사건이 발생했다. 수습을 위해 연일 비상근무하면서도 머리 속에는 ‘훙차오’와 ‘훙커우(虹口)’의 두 지명이 떠나질 않는다.
옛날 상하이 하늘의 관문은 훙커우공원에 있었다. 루쉰 공원이 정식 명칭이지만 여전히 홍커우 공원으로도 불린다. 45년 11월 백범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이 27년만에 귀국하기 위해 미군 비행기를 탄 곳도, 32년 4월29일 매헌 윤봉길 의사가 민족독립운동사에 영원히 빛나는 이정표를 세운 곳도 이 훙커우 공원이었다.
상하이에서 일해 보면 ‘조상 탓’을 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백범과 매헌을 비롯한 수많은 순국선열의 행적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해외 생활 수십년 동안 상하이 교민들처럼 애국심과 사명감이 강한 교민들은 처음 본다. 상하이의 역사적 배경 때문일까.
훙커우공원은 몇 년전까지만 해도 매헌의 의거와 관련된 아무런 표지조차 찾아볼 길이 없었던 황량한 곳이었다. 지금은 총영사관과 매헌기념사업회가 상하이시의 협조를 얻어 매정(梅亭·매헌의 의거를 기념하는 정자)을 건립했고 의거현장 표지판을 세웠다. 정자 주변에는 무궁화와 매화를 심은 매원(梅園)을 가꾸었고 여러 곳에 윤봉길의사 의거지라는 표지판을 설치했다.
작년 4월29일에는 한중 양국어로 새긴 비석을 매원 입구에 건립했다. 비석을 세우기 위해 훙커우구(區)정부는 5백㎞나 멀리 떨어진 저장(浙江)성 닝보(寧波)해변에서 커다란 바위를 구해오는 열성을 보였다. 특정 외국인을 기념하는 비석으로는 중국 대륙에서도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한다.
한중 양 국민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공동으로 투쟁한 우의는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가 아니다. 21세기 태평양시대를 열어나가는 동반의 협력자 관계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손상하 (상하이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