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봐야 할텐데, 그래 그래 그기 가면 고향이 보이지, 콜록 콜록.』(할아버지 목소리)
“아버지 아버지, 이번엔 장난감 사오시는 거죠.”(꼬마의 목소리)
“여보 이러다 기차시간 늦겠어요, 철아 아버지 다녀오시라고 인사드려야지.”(여자 목소리)
30일 오전2시경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국제웅변학원 강의실. 이른 새벽인데도 목소리연기 연습을 하는 30∼50대 아저씨들로 시끌벅적하다.
성우지망생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들은 ‘동화구연아버지회’ 회원들. 1일 오후3시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어린이도서관 3층 강당에서 펼칠 ‘제77돌 어린이날 맞이 아버지들이 펼치는 이야기 한마당’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화구연아버지회는 자녀에게 동화를 읽어주다 그 재미에 푹 빠져 아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동화구연 봉사활동에 나선 ‘자상한 아빠들’의 모임이다. 91, 92년 전국아버지동화구연대회 입상자 16명이 모여 92년에 모임을 만들었다. 그 후 2개월에 한번꼴로 보육원 양로원 소아과병동 낙도초등학교 등을 방문해 무료 공연을 펼쳐오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명. 연령대는 20대 후반부터 50대까지이고 직업은 농부 교사 택시기사 전직경찰관 언론인 등 각양각색이다.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밭농사를 짓는다는 회원 서정환(徐正煥·51)씨는 “이미 막내아들이 고3이지만 동화구연에 열중하다보면 ‘재롱둥이’ 아기 때의 모습이 떠올라 한없이 흐뭇하다”고 말했다.
회장은 1회 대상 수상자인 편사범(片士範·46·국제웅변학원원장)씨. 회비는 지난해까진 회원당 월1만원씩을 냈지만 올해부터는 편회장이 “경비는 내가 책임질테니 회원들은 몸으로 때우라”고 해 없어졌다.
“평소 과묵했던 아빠의 입에서 ‘아, 여보’하는 간드러지는 소리가 나오니 아들이 한없이 신기해 해요. ‘아빠 한번 더 해주세요’ 하고 조르기도 하지요.”
회원 조상희(趙相熙·38·유치원원장)씨의 말이다.
연습장 창밖이 희뿌옇게 밝아오는데도 동화나라로 푹 빠져들어간 아빠들은 시간 가는 걸 잊은 듯했다. 02―966―8333
〈김경달·이명건기자〉d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