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 일본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의 보고서에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북한측에 강력히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시키기로 한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호응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이는 또한 남북관계 개선이 더 이상 당사자인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에 이해가 걸린 관련국들의 협조로 풀어야 할 국제적인 문제임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한미일 3국이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 하와이에서 고위정책협의회를 열고 이같이 합의한 배경에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현실인식이 깔려 있다.
한국의 노력만으로는 북한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북한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기본합의서 이행문제를 반영시켜 북한에 대해 일종의 압박을 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페리보고서’에 기본합의서 문제가 포함된다고 해도 남북관계에 과연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미국과 북한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94년 10월 제네바에서 만나 작성한 합의문에 “북한은 남북대화에 착수한다”고 명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남북대화에 별 진전이 없었음을 되돌아보아도 그렇다.
특히 기본합의서는 남북간 △화해 △불가침 △교류 협력에 관한 원칙과 이상적인 목표를 담고 있어 단순한 당국간 대화 재개보다는 이행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따라서 페리보고서에 기본합의서 이행문제가 언급되더라도 남북관계가 곧 기본합의서를 실천하는 단계로 접어들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이 북한을 남북관계 개선의 장(場)으로 이끌어낼 직접적인 지렛대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을 통해 기본합의서 이행을 촉구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기본합의서의 취지를 고려하면 남북한이 외부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직접 이행문제를 논의하는 게 원칙에 맞는 일이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