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최병순(崔丙順)할머니에 관한 뉴스는 우리들 각자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그는 평생 모은 10억여원의 재산을 고려대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그의 가시밭길 인생역정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1백억원보다, 1천억원보다 더 값질지 모른다. 가난한 농부의 딸,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한(恨), 온몸에 종기가 돋는 괴질, 도박과 술에 중독된 남편의 행패, 이혼, 식모살이 바느질품팔이 과일행상 옷감장사, 느닷없는 빨갱이 누명과 고문, 10년간의 옥살이, 반복되는 식모살이 암표상 윤락가빨래일 보모생활…. 그리고 재혼한 노인의 아들에게 사기당해 목돈을 잃기도 했다.
최할머니는 말한다.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온 한평생입니다. 내겐 돈이 자식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이나마 남기고 싶습니다. 부디 내 돈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나라의 큰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가 일생의 피땀이 밴 고향 논밭을 처분하고 혼자 사는 아파트까지 장학금에 보태기로 결심해 실행에 옮기는 동안 이웃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부유층 탈세자 1천3백여명이 적발돼 6천여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이 가운데는 위장이민으로 최근 5년간 세금 14억원을 탈루하고 재산을 달러로 빼돌려가며 국내외에서 호화생활을 해온 의사부부, 10년에 걸쳐 계획적으로 주식을 명의신탁한 뒤 35억원 상당을 자녀에게 변칙상속한 대학교수 등이 포함돼 있다. ‘많이 배우고 잘 나가는’ 이들의 눈에 최할머니의 선택은 한낱 바보같은 짓으로 비칠까.
그래서는 안된다. 최할머니의 선행은 탐욕의 세태에 던지는 의미있는 충격이 돼야 한다.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베풀기는커녕,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탈세에 몰두한 부유층이 최병순 장학금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들이야말로 ‘정신적 최하층민’이 아닐 수 없다. 또 입만 열면 애국과 국민을 위한 봉사를 가장 크게 외치면서 뒷전에서는 사욕과 집단이기(集團利己)에 사로잡힌 다수의 지도층이 누구보다도 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또 최할머니의 행동이 ‘남에게 부담이 전가되건 말건 내 것은 무조건 움켜쥐려 하는’ 더 가진 자들에게 반성의 재료가 되기 바란다. 한계생활자 정도로 소득을 신고한 고소득 전문직종사자 등이 그런 부류일 것이다.
이 난에 이름을 기록하고 싶은 분들이 더 있다. 콩나물행상 등으로 평생 모은 12억원대의 재산을 지난 1월 충북대에 기증한 임순득할머니, 혼자 사는 아파트만 남기고 5억원을 지난해 11월 가톨릭대에 내놓은 안공순할머니. 이들은 모두 직계가족이 있다. 할머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