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랑 이종상의 작품세계는 ‘한국현대미술의 자생성 검증작업’이라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자생성 탐구는 “우리 것을 가지고 현대미술을 이루어내겠다”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바로 민족양식으로서의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창출했던 겸재의 진경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진경정신을 계승, 실천하기위해 그는 한국미술의 자생적 원류들을 발굴하여 탐구하고, 그로부터 현대적 양식을 도출하려 했다.
‘자생성 탐구’는 재료와 기법에서 잘 드러난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재료와 기법은 모두 우리의 미술전통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했던 재료기법들을 현대적으로 개발하여 자기화한 것이다. 그의 원형상 연작들에서 발견되는 동유화기법(동판에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기법), 전통한지의 반투명 성질을 이용한 장지기법 등은 모두 한국미술의 자생성을 탐구하면서 얻은 성과들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원형상 97061―마리산’은 우리 창호문화에 원형을 두고 개발한, 조명을 뒤쪽에서 비추는 장지벽화로서 이 전시의 압권이자 한국현대미술의 자생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 미술의 순수한 자생적 요소들로 이뤄낸 이 작품에서 그의 오랜 화두였던 ‘자생성’의 완결편을 볼 수 있다.
미술분야에서 일랑이 제기하고 실천해온 자생성 탐구는 서구화로 치달아온 우리의 지난 한 세기를 돌이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자생성이 있는 미술은 어떠한 외부의 영향도 흡수하여 자기화 할 수 있다.
지나치리만큼 철두철미하고 완벽한 그의 작가적 기질은 작품의 유연성을 위축시키고 작품이 딱딱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적인 것을 발굴하고 현대화하려는 자세와 노력은 큰 귀감이 된다고 하겠다.
서정걸(미술평론가)